[뉴스분석] 소비·원자재 수입 줄어 사상 최대 흑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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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7억5000만 달러. 올해 상반기에 올린 경상수지 흑자액이다. 반기 기준으로 사상 최대 규모다. 지난 3월의 경상수지 흑자 66억5000만 달러와 6월의 54억3000만 달러는 월간 기준으로 역대 1, 2위 기록이다.

무역과 같은 대외거래를 통해 경상수지 흑자를 냈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달러가 국내로 들어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때 2000억 달러 선을 위협받았던 외환보유액이 2300억 달러 이상으로 불어나고, 원화가치가 달러당 1200원대 중반에서 안정을 찾고 있는 것도 경상수지 흑자가 큰 몫을 했다.

경상수지 중에선 물건을 사고팔아 올린 상품수지 흑자가 259억8000만 달러에 달했다. 경상수지 흑자의 1등 공신이다. 국가별로는 중국에 대한 흑자가 124억6000만 달러로 가장 많았고, 동남아(94억9000만 달러)와 유럽연합(82억8000만 달러) 등이 뒤를 이었다. 한국은행 이영복 국제수지팀장은 “지난달엔 기업들이 반기 결산을 앞두고 수출을 집중적으로 늘렸다”며 “액정표시장치(LCD) 패널과 철강 등을 중심으로 한 중국 수출이 호조였다”고 말했다.

지난해 상반기 93억4000만 달러의 적자를 냈던 여행·운수 등 서비스수지도 올해 상반기엔 적자액이 59억 달러로 줄었다. 특히 상반기 여행수지는 5억5000만 달러의 적자로 전년 동기(57억9000만 달러)보다 크게 감소했다. 경기 침체와 원화가치 하락으로 해외 여행이나 연수 등이 줄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대한 흑자 뒤엔 어두운 면도 있다. 올해의 경상수지 흑자는 수출보다 수입이 더 크게 감소하면서 나타난 ‘불황형 흑자’라는 점이다.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 상반기에도 217억2000만 달러의 흑자를 냈다. 올 상반기와 거의 비슷한 규모다. 그때나 지금이나 흑자의 구조도 같다. 투자와 내수 부진으로 수입 수요가 크게 위축된 데 따른 흑자였던 것이다.

올 상반기 수출은 1679억5000만 달러로 전년 동기(2211억6000만 달러)보다 24.1% 감소했다. 지난해 상반기 2166억6000만 달러였던 수입은 올 상반기 1419억7000만 달러로 34.5% 줄었다. 내수가 위축되면서 소비재 수입(전년 동기 대비 -26.8%)이 준 데다 수출을 하기 위한 원자재도 덜 사왔기(-39.5%) 때문이다. 또 기계류 같은 설비투자용 자본재 수입(-26.8%)도 줄었다.

한은과 금융연구원 등은 하반기 중에도 불황형 흑자가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다만 경기가 조금씩 회복돼 국내 투자와 소비가 활성화될수록 경상수지 흑자 규모도 축소될 것으로 예상했다.

한은은 경상수지 흑자가 7월에 40억 달러 내외, 하반기 전체로는 80억 달러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금융연구원은 하반기 경상수지 흑자 규모를 65억 달러로 예상했다. 금융연구원 이규복 연구위원은 “하반기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국제 유가가 상승세를 보이면 수입이 차츰 늘어날 것”이라며 “서비스수지 적자도 상반기보다 확대되면서 전체 경상수지 흑자 폭도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김원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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