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명부제 3당 2색 공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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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국민회의가 최근 확정한 정치개혁안이 국회 정상화 이후 여야의 최대 현안으로 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 도입과 국회의원수 감축 등을 뼈대로 한 새로운 틀이 현실화하면 정당간 세력판도의 대변화가 필연적이기 때문이다.

특히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은 동서 지역갈등의 해법으로 정당명부제를 제시, 기필코 관철시키겠다는 의사를 여러 차례 밝히고 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결사반대다.

정당명부제는 여권의 '야당 파괴' 와 정국 주도권 장악을 위한 전략이라는 주장이다.

야당 의원, 특히 당적을 옮길 경우 당선 가능성이 희박한 영남권 의원들을 빼내가기 위한 '미끼' 라는 것이다.

한나라당은 또 정당명부제를 '여당 수뇌부의 권한강화를 위한 술책' 으로 파악하고 있기도 하다.

비례대표 후보 공천권을 이용, 말 잘듣는 '친위부대' 만을 키움으로써 일사불란한 당 체제를 만들려는 의도가 있다는 지적이다.

심지어 "박정희 (朴正熙) 전 대통령이 유정회를 만들었듯 金대통령은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를 도입해 국회의 통법부화를 꾀하고 있다" 고까지 폄하하기도 한다.

공천 민주화가 안된 상황에서는 당론에 절대복종하는 인사만이 비례대표 의원으로 '간택' 돼 유정회에 못잖은 부작용이 발생할 것이라는 논리다.

물론 정당명부제가 실시되면 영남권 내에서 국민회의와 자민련이 비교적 선전하는 반면 한나라당은 호남에서 재미를 거의 못볼 것이라는 이해타산도 깔려 있다.

실제로 현 정당지지도가 이어질 경우 국민회의.자민련은 영남권에서 10석 남짓을 챙기지만 한나라당은 호남에서 1~2석을 건지는 데 불과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자민련도 내심 못마땅하다.

무엇보다 5% 안팎에 불과한 낮은 정당지지도로는 지금보다 엄청난 폭의 의석수 감소가 예상되는 까닭이다.

이로 인해 자민련측은 국회의원 선거제도를 개편한다면 정당명부제 대신 아예 비례대표 성격의 전국구 의원제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한편 국민회의에서도 내놓고 말은 못하지만 초.재선 의원들 사이에선 "정당명부제가 실시되면 참신한 정치 신인들의 등용이 곤란해진다" 며 우회적으로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이들은 의원수를 2백50명선으로 줄이고 지역구와 비례대표를 1대1로 할 경우 지역구 확보가 극히 어려워질 것을 내심 두려워한다.

결국 한나라당과 자민련은 물론 국민회의 내부 반발도 적잖은 상태에서 정당명부제로의 순탄한 개편을 낙관하긴 어렵다.

그럼에도 정치권 물갈이에 대한 국민적 요구를 지렛대 삼아 여권 핵심이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 것으로 예상돼 결과가 주목된다.

남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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