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6살짜리 명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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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권삼득 (權三得) 은 조선조 영.정조 (英.正祖) 시대에 정착된 판소리 초창기의 '여덟 명창' 가운데 한사람이다.

'흥보가' 의 달인 (達人) 으로서 특히 '제비 후리러 나가는' 대목이 일품이었던 그에 관해서는 수많은 일화가 전해진다.

본래 그는 전북 익산에서 유생 (儒生) 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하라는 공부는 하지 않고 일찍부터 술과 노래에 파묻혀 살았다.

마침내 가문에서 들고 일어나 저같은 탕아 (蕩兒) 는 죽여 없애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때려 죽이려 마당에 눕혀 놓고 거적을 덮었는데 그가 마지막으로 소리 한 마디만 부르게 해달라고 간청했다.

허락을 얻어 거적 속에서 부른 그의 노래는 그의 죽음을 보러 모여 있던 가문의 모든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후에 신재효 (申在孝)가 평한 바 '천길 높은 벼랑을 솟아 만길 폭포수로 내려쳐 출렁거리는 기상' 이었던 것이다.

가문에서는 하는 수 없이 그를 남원으로 장가보냈고 이때부터 본격적인 판소리의 길에 들어서니 그의 나이 20세였다.

권삼득 뿐만 아니라 현대에 이르기까지 대개의 명창들은 느지막이 판소리의 길에 들어섰다는 공통점을 보인다.

80대의 '현역' 인 박동진 (朴東鎭) 명창도 노래 수업을 시작한 것은 18세 때였고, 명성을 얻은 것은 40대 중반이었던 60년대부터였다.

물론 이들은 대개 선천적 재능을 타고 났으나 그 재능이 외부적 환경에 의해 억압됐거나 이런저런 사정 때문에 잠재됐던 것 뿐이다.

음악가들에게서선천적 재능, 곧 천재성이 일찍 발견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 천재성을 계속 깎고 다듬어 예술의 새로운 경지를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세살때 음 (音) 을 이해했고 다섯살때 스스로 작곡한 모차르트를 비롯한 서구의 여러 음악가들이 좋은 예다.

그래서 사람들은 '신동 (神童)' 의 출현을 놀라워하고 반가워한다.

하지만 천재성이 일찍 발견되고 그 재능이 빠른 속도로 발휘될수록 천재성이 소모될 확률이 높다는 통계가 나와 있는가 하면, 미국의 월스트리트 저널은 얼마전 열살 안팎의 어린 음악가들이 혹사당하는데 대해 우려를 표명하기도 했다.

여섯살짜리 신동이 '흥보가' 를 완창한다는 소식은 분명 놀랍고 신기하다.

문제는 그와 같은 천재성의 조기 표출이 당사자에게 무거운 짐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깎고 다듬는 것은 어른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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