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구 회장 석유화학 지분 매집에 갈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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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오전 11시 서울 신문로 금호아시아나그룹 본사.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금호석유화학의 이사회가 열렸다. 이사회에 참석한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대표이사 회장은 자신의 해임건에 반대 입장을 폈다. 하지만 형인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사외이사 등이 참석한 이사회에서 박찬구 회장의 해임안이 의결됐다.

금호아시아나그룹에 어떤 일이 있었기에 형이 동생을 해임하는 일이 벌어졌을까.

지난 7일, 박찬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화학부문 회장과 아들 박준경 금호타이어 부장은 그동안 가지고 있던 금호산업 지분 6.11%를 모두 처분했다. 금호산업은 공정거래법상 그룹의 지주회사로 대우건설·아시아나항공·금호생명·서울고속버스터미널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박찬구 회장 부자는 대신 금호석유화학 지분을 기존 10.01%에서 18.47%까지 높이면서 최대 주주가 됐다. 금호석유화학은 금호산업과 함께 그룹의 실질적인 지주회사 역할을 하는 회사로, 금호타이어·금호생명·금호폴리켐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박찬구 회장이 석유화학 지분을 늘리는 가운데 현 그룹 회장인 형 박삼구 회장 부자(아들 박세창 그룹 전략경영본부 상무)도 석유화학 지분을 10.01%에서 11.76%로 늘렸다.

그룹 안팎에서는 “박찬구 회장이 금호산업 지분을 정리한 것은 대우건설 인수합병(M&A) 과정에서 자신의 책임이 없다는 것을 알리려는 의미”라는 의문이 제기됐다. 박찬구 회장이 금호석유화학과 금호타이어를 계열 분리해 그룹에서 떨어져 나오려는 것이라는 얘기도 더불어 나왔다. 그래서 형제 지분 경쟁이 시작된 것이라는 추측도 있었다. 하지만 금호그룹 측은 부인했다.

13일, 고 박정구 금호그룹 전 회장의 7주기 추모행사가 열린 경기도 화성시 기천리 선영. 형인 박삼구 회장은 오전 9시30분쯤 도착했고 동생인 박찬구 회장은 20여 분 뒤 도착했다. 형제는 추모행사가 끝날 때까지 한 시간가량 별다른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그룹 관계자는 “엄숙한 추모식장에서 무슨 말씀을 나누겠느냐”고 설명했지만 둘 사이의 냉랭한 분위기에서 ‘뭔가 일이 있다’는 추측이 퍼졌다.

그리고 28일, 박삼구 회장은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자신의 2선 퇴진과 박찬구 회장 해임을 전격 발표했다. 형제 경영의 전통을 이어 온 금호그룹의 형제 경영이 4대 박삼구 회장을 마지막으로 끝이 난 것이다. 금호그룹은 형제 상속의 전통을 가진 기업이다. 창업자인 박인천 회장에 이어 장남인 고 박성용 명예회장이 그룹을 이끌었다. 박성용 회장이 1996년 타계한 후에는 차남인 고 박정구 회장이 경영을 맡았으며 2002년 그가 작고한 뒤부터는 3남인 박삼구 현 회장이 그룹을 이끌었다. 박찬구 회장은 4남이다. 금호의 형제들은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인 금호산업과 금호석유화학의 보유 지분도 같았다. 박찬구 회장 부자가 이달 초 금호석유화학 지분을 늘리기 전까지는 차남, 3남, 4남 일가가 다같이 금호석유화학 지분 10.01%씩, 금호산업지분 6.11%씩을 가지고 있었다. 박찬구 회장은 형 박삼구 회장이 자금이 넉넉하지 않은 상태에서 대우건설·대한통운 같은 대형 기업을 잇따라 인수하면서 형과 틈이 벌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박찬구 회장은 이들 기업 인수에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염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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