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비정규직 근본 해법은 노동 유연성 제고부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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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정부와 여당이 비정규직법의 유예나 정규직 전환 의무기간의 연장에 매달리지 않고 비정규직 문제를 원점에서 다시 검토하기로 했다.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28일 “비정규직법 유예안에 집착하지 않고 근본적인 해결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이영희 노동부 장관은 “9월 정기국회에서도 사실상 법 개정안의 처리가 힘든 만큼 7월부터 시행되고 있는 현행 비정규직법에 따라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적극 독려하겠다”고 말했다. 정부와 여당은 그동안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하는 의무기간은 현행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하는 비정규직법 개정안을 내놨으나 민주당의 반발로 국회 통과가 여의치 않자 일단 시행을 유예하는 방안을 추진해 왔다. 그러나 유예안마저 무산되자 아예 개정안과 유예안을 모두 포기하고 새로운 해법을 찾기로 한 것이다.

정부와 여당의 이 같은 입장 변경은 자발적으로 의도했다기보다 법 개정과 시행 유예가 모두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졌다는 판단에 따른 불가피한 선택으로 보인다. 야당의 반발에 떠밀려 어쩔 수 없이 택한 고육지책인 셈이다. 문제는 개정안과 유예안을 포기한 것만으로는 지금 벌어지는 비정규직의 대량해고 사태와 장차 벌어질 노동시장의 왜곡과 파행을 막을 수 없다는 점이다. 따라서 비정규직 문제의 해법은 현행법 시행에 따른 부작용을 최대한 줄이면서 동시에 그 부작용을 없앨 수 있는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는 것이어야 한다. 개정안과 유예안 모두 비정규직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보다는 일단 눈앞에 닥친 대량해고를 모면해 보자는 미봉책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당장 현행법 시행에 따른 부작용을 막기 위해서는 가급적 많은 인원이 정규직으로 전환되도록 독려하되 부득이한 실직자에 대한 전직 지원과 구호대책을 병행해야 한다. 다만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은 말 그대로 독려와 지원에 그쳐야지 강제성을 띤 조치여서는 안 된다. 비정규직을 쓸 수밖에 없는 기업더러 강제로 정규직으로 전환시키라고 강요하면 기업의 부담이 가중될 뿐만 아니라 편법과 탈법을 부추길 뿐이다.

한나라당은 노동법 관련 특별대책반(TF)을 만들어 근본적인 해결방안을 모색하겠다고 했다. 근본적인 해결방법으로 ‘비정규직 사용의 제한’이나 ‘정규직 전환 의무비율 도입’, ‘계약기간 완전 철폐’ 등이 검토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비정규직을 고용할 수밖에 없는 기업과 비정규직으로라도 취업하겠다는 근로자들이 존재하고 있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이를 무시한 대책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비정규직법이 제정될 당시부터 이상론에 근거한 인위적인 규제가 부를 참사를 누차 경고했었다. 비정규직 문제의 근본적인 해법은 정규직의 과잉보호와 같은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풀어 자연스럽게 정규직 고용이 늘도록 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그런 전제하에 기업이 자발적으로 비정규직의 고용안정과 처우개선을 하도록 유도하는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 순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