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경영인 체제 금호 … 구조조정 마무리 최대 숙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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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박찬법 신임 회장

창업자인 고 박인천 회장이 타계한 뒤 25년간 유지돼 온 금호아시아나그룹의 형제 경영이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돼 그룹 경영에 변화가 생길 전망이다. 하지만 박삼구 그룹 회장은 일정 부분 그룹에 영향력을 계속 미칠 것으로 보인다.

박삼구 회장이 28일 기자회견에서 “향후 전문경영인 체제로 운영되고 나는 명예회장으로 물러나 재무구조 개선 이행 등 뒤에서 도와주는 일을 할 것”이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그는 이날 형제 경영 전통이 끝난 것이냐는 질문에 “가급적 형제 경영을 할 수 있으면 한다는 것이지 아무나 형제 경영을 한다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형제 경영 전통에 따라 동생인 박찬구 화학부문 회장이 회장직을 승계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박 회장은 또 “금호그룹에는 ‘65세 룰(회장을 65세까지 맡는다는 규칙)’이 있지만 외부 인사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말해 전문경영인 체제가 장기화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이번에 그룹 회장을 맡게 된 박찬법 아시아나항공 대표이사 부회장의 나이는 64세다.

박삼구 회장이 명예회장으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실제 그룹 경영이 박삼구 회장의 손에 의해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박 회장은 “명예회장으로 물러나면 그룹 회장이 그룹 경영을 책임지고 경영하게 된다. 나는 계열주주로서 재무구조 개선 약정에 동의하고 그 부분을 도와주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나머지 형제간 합의로 결정=박삼구·찬구 형제 회장의 동반 퇴진과 관련, 그룹 일가의 합의가 있었다는 게 그룹 측의 설명이다. 하지만 박찬구 회장 측이 해임 의결에 대해 반발할 경우 경영권 분쟁이 본격화할 여지가 남아 있다. 박찬구 회장은 이날 이사회에 참석, 자신의 해임에 불복 의사를 밝혔다. 박찬구 회장 측은 이사회 결정에 대한 가처분신청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나머지 형제의 입장이 정리돼 박찬구 회장의 반발이 큰 의미가 없다는 분석도 있다. 지주회사 격인 금호석유화학의 경우 고 박정구 전 회장의 장남인 박철완 아시아나항공 전략팀 부장과 박삼구 회장 부자가 함께 갖고 있는 지분이 23.52%다. 여기에 미국에 체류 중인 박재영(고 박성용 전 회장의 장남)씨가 보유하고 있는 지분까지 합하면 28.17%에 달한다. 박찬구 회장 부자의 금호석유화학 지분이 18.47%에 달하지만 경영권을 가져오기에는 역부족이다. 나머지 가족이 연대하는 한 박찬구 회장 부자는 대주주 이상 의미를 갖기가 어렵다는 분석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향후 그룹 구조조정은=이번 사태는 금호그룹의 대내외적인 이미지에 나쁜 영향을 주고 대우건설 매각 등 구조조정 작업에도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금호그룹이 사주가 아닌 전문경영인 체제로 운영되면서 대우건설·금호생명 등 주요 계열사 매각 문제도 쉽게 풀리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금호 총수 일가가 퇴진했더라도 채권단과 맺은 재무구조 개선 약정에 따라 구조조정은 그대로 추진해야 한다”며 “전문경영인 체제가 보다 적극적인 구조조정의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금호의 주 채권은행인 산업은행 관계자도 “자칫 지배구조 문제가 금호에 대한 시장의 불안감을 증폭시키지 않기를 바란다”며 “총수 일가 퇴진이 금호에 대한 구조조정에는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김창규·강병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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