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볶이 공방' 벌어졌던 '허재 아줌마네' 가보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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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대 학생들이 나보고 농구선수 허재를 닮았다고 ‘허재 아줌마’라는 별명을 붙여줬죠. 내가 쌍꺼풀이 있어서 그렇지 정말 (허재와) 닮았죠?”

28일 서울 이문1동 한국외대 근처 골목길에 위치한 분식가게 ‘허재 아줌마네’ 주인 김순임(52·여)씨는 음식을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손님이 골라 담은 튀김을 떡볶이 양념국물에 버무려서 포장해주자마자 순대를 썰었다. “아줌마 김밥 한 줄이요”라는 주문에 얼른 자리를 옮겨 김밥을 둘둘 말았다.

‘허재 아줌마네’는 지난달 이명박 대통령이 민생시찰 당시 어묵을 사먹고 간 곳이다. 하지만 민주당 이석현 의원이 “떡볶이집 가지 마십시오. 손님 떨어집니다”라는 발언을 한 뒤 여야간 ‘떡볶이 논쟁’이 벌어져 더 유명해졌다. 그 와중에 이 의원 보좌관이 민주당 의원이 먹을 간식으로 떡볶이 6만 원어치를 사가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날 기자가 찾은 가게는 이석현 의원의 우려와 달리 튀김과 어묵을 먹으러 온 손님들로 붐볐고, 주인 아주머니는 정신 없이 바빴다.

골목길 삼거리에 위치해 동네에서 목이 좋은 곳으로 통하는 6.6㎡(2평) 남짓한 가게 안에는 식탁 6개와 의자 17개가 놓여 있다. 벽 여기저기에는 예쁜 글씨로 적은 메뉴가 붙어 있고, 주방에는 주방 아줌마 1명이 일하고 있었다. 오른쪽 벽에는 노란색 비닐장판이 덮인 평상이 있고 작은 베개가 눈에 띄었다. 한 사람이 누울 만한 크기의 평상에는 김씨의 작은 아들(21)이 TV를 보고 있었다. 그는 어머니가 볼일을 보러 나간 사이 튀김을 가위로 잘라 떡볶이 국물에 버무려서 손님 앞에 내놓았다.

이문1동에서 18년째 분식 장사를 해온 김씨는 동네에서 ‘억척 아줌마’로 통한다. 남편의 사업 실패로 떠안게 된 억대 사채를 떡볶이를 팔아서 다 갚았다.

“남편이 책 제본 사업을 하면서 은행 빚과 사채를 끌어 썼는데 자금 사정이 악화돼서 집을 팔아도 다 못 갚았어요. 빚 독촉에 너무 힘들어서 야반도주를 할까, 약을 먹고 죽을까도 생각했어요. 그래도 자식들 보는 순간 먹고 살아야겠다 싶어서 외대 전철역 앞에 포장마차를 차려서 떡볶이와 오뎅을 팔았어요. 17년 만에 빚을 다 갚으니 주위 사람들이 억척스럽다고 하대요.”

그래도 가게는 아직 월세다.

정치권의 떡볶이 공방에 대해서는 “이제 그 얘기는 그만하고 싶다”고 했다.
“그 일로 큰아들(27)이 상처를 많이 받았어요. 그래도 저희 같은 사람이 뭐 할 수 있는 게 있나요?”

김씨의 큰아들은 이석현 의원의 발언 직후 인터넷 포털에 글을 올려 이 의원의 사과를 요구한 바 있다.

“큰아들이 국회의장 공관에서 전투경찰로 군복무를 했어요. 다른 부모들은 자식들한테 떡이나 피자를 보냈다고 하는데 저는 떡볶이와 튀김을 보냈죠.”

김씨는 아들 자랑을 빼놓지 않았다.

“첫째와 둘째 모두 엄마 가게 일을 잘 도와요. 고등학교 졸업한 이후부터는 용돈도 자기 손으로 벌어 쓰고 있어요.”

김씨의 희망은 딱 두 개다.

“‘허재 아줌마네’ 분점 하나 내는 게 꿈입니다. 그리고 요즘 인기 있는 ‘무한도전’의 유재석하고, ‘1박2일’의 강호동이 한 번 왔다 갔으면 좋겠어요.”

‘아들 취업은 소원이 아니냐’는 물음에는 “고등학교 졸업한 이후부터는 제 앞가림은 자기가 알아서 해야죠”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김용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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