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지방재정위기 남의 일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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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국제통화기금 (IMF) 구제금융체제가 들어선 지 9개월이 지난 지금 각종 거시경제 지표들이 어둡고 세수는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크게 줄고 있다.

반면 금융권의 부실채권 정리, 실업자 대책, 경기부양과 같은 큼직한 재정수요들은 점점 산적되고 있다.

정부는 이런 재정수요와 공공부문의 적자를 보전할 목적으로 마침내 국내총생산 (GDP) 의 4.8%라는 대규모 적자재정을 편성키로 했다.

국가 경제와 재정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결정이다.

경제와 재정이 어렵기는 어떤 면에서 국가보다 지방이 더하다.

최근 일부 교육청에서 교사들이 인건비를 제때 주지 못한 사례나 꼭 필요한 교사신축이 연기되는 사례, 일부 자치단체가 특별회계 예산을 끌어다 월급을 지불하는 사례들이 이를 입증해 준다.

차츰 행정서비스의 삭감에 대한 논의가 고조되고 몇몇 자치단체들의 파산 가능성이 공공연히 거론되는 것을 보면 분명히 지방재정에 심상치 않은 기류가 흐르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상반기의 지방세 징수실적은 당초 목표액에 크게 부족하고, 일부 자치단체에서는 20%가 넘는 세수부족현상이 나타났다.

지방의 기간세목인 취득세와 등록세 수입이 부동산 경기침체.차량등록 감소 등으로 인해 전년대비 무려 25% 가량 감소했다.

만일 앞으로 세수결손이 더욱 악화된다면 일부 자치단체들은 심각한 재정적자현상을 겪을 것이고 극단적으로는 지방채 발행을 통해 재정적자를 보전해야 하는 지경에 몰릴 수도 있다.

물론 향후의 경제여건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만일 경기회복이 지연되는 경우 계속되는 세수감소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지방채가 지방재정에 치명타를 가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70년대에 미국.유럽.일본의 일부 도시들이 오일쇼크와 같은 외부적인 충격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과도한 지방채 발행과 부실한 재정관리를 한 결과 재정위기를 겪었던 사실을 우리는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근년에도 미국의 워싱턴DC.뉴욕시.오렌지 카운티 등에서 재정위기가 발생했고, 현재는 이웃 일본의 도쿄 (東京) 도와 일부 자치단체들이 버블경제시대의 과도한 투자와 누적된 채무로 재정위기의 회오리에 말려들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지방재정의 위기는 이제 더 이상 남의 나라 이야기만은 아니다.

지금 우리의 자치단체들이 자신의 재정상태를 정확히 진단하고 적절한 대응전략을 세우지 못한다면 조만간에 우리도 외국의 도시들이 겪었던 뼈아픈 재정위기를 맞을 가능성이 크다.

지방재정의 위기상황을 막기 위해서는 각 자치단체들이 세수확충에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는 한편 행정의 생산성과 세출의 효율성을 높이는 전략을 실천해 나가야 한다.

구체적인 전략으로서 향후 3~5년을 대비하는 지방행정의 '위기관리체제' 를 구축하고 행정서비스의 공급방식에 일대 전환을 시도해야 한다.

과감한 민간위탁과 함께 만성적자에 시달리는 지방 공기업의 일부 또는 전부를 매각하는 정책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이와 함께 재정상태에 대한 주기적이고 정확한 진단을 실시해 이를 토대로 지방채 발행에 따른 미래의 위험부담을 최소화하는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각종 비영리법인.시민단체.자원봉사자들이 보유하고 있는 인력과 네트워크를 지방행정의 전달자로 승화시키는 공공.민간의 파트너십 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위기상황의 극복과정에서는 무엇보다도 지역주민과 함께 호흡하는 현장행정의 활성화가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탈루.은닉 세원의 징수, 지방세.세외수입 부문에서의 신 세원 (稅源) 발굴, 경상비 절감, 자본투자사업의 우선순위 조정과 같은 세입.세출 부문의 건전화 노력이 따라야 한다.

이러한 가운데 중앙정부는 지방을 위기극복의 진정한 동반자로 간주하고 자치단체의 창의성과 노력이 결실을 볼 수 있도록 행정.재정의 모든 측면에서 최선의 지원을 해주어야 할 것이다.

중앙정부는 거시적 경제지표에 치중한 나머지 지방의 경제와 재정이 함몰하는 것을 간과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

국가와 지방은 하나의 유기체다.

어느 한쪽이 무너지면 다른 쪽도 함께 무너지며, 국민과 주민은 서로 다른 이름을 갖는 공동체임을 인식해야 한다.

지금은 국가의 경제.재정에 기울이는 관심과 노력의 절반만이라도 지방에 기울여서 조금씩, 은밀히 다가오고 있는 지방재정의 위기를 예방해야 할 때다.

임성일(지방행정연구원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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