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대명사 “안와르 풀어줘라” 말련 시민요구 확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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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앞으로는 게릴라식 시위를 벌일 예정이다.

상가.시장.은행 등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면 어디나 안와르의 초상화를 내걸겠다. 싸움은 이제부터다. "

불과 며칠 전까지 집권 말레이국민기구 (UMNO) 내 청년동맹 소속이었던 찬드라 (42) 와 무자파르 (39) 는 24일 오후 콸라룸푸르 잘란 라판가 테르방에서 기자와 만나 결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안와르집 부근에서 기습시위를 벌이다 방금 도망친 이들의 옷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이번 사태의 본질은 기득권을 지키려는 구세력의 대반격" 이라고 찬드라는 주장했다. 무자파르가 좀더 자세히 설명했다.

"마하티르는 고령 (72) 인 데다 두번이나 심장수술을 받아 건강이 문제다.

그런데 후계자로 내정된 안와르가 부패척결과 족벌주의 청산을 외치기 시작했다. 이에 자극받은 기득권 세력은 살아남기 위해 '안와르 죽이기' 에 착수했고 결국 안와르는 남색 (男色) 이라는 치욕적인 누명을 쓰고 감옥에 끌려갔다. "

그러나 수천명 규모의 군중시위가 23일부터 소강상태에 접어들면서 콸라룸푸르는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안정을 되찾고 있다.

"남편의 뒤를 잇겠다" 던 안와르의 부인 완 아지자 이스마일 여사도 23일 경찰에 소환된 뒤 강경발언을 자제하고 있다. 단지 안와르와 마하티르의 자택이 있는 동부 다만사라 지역은 예외였다. 시위를 막기 위해 경찰은 이곳으로 통하는 도로를 차단한 채 행인과 차량들을 일일이 검문하고 있었다.

공항에서의 검문검색도 삼엄했다.

말레이시아 당국은 특히 외국취재진의 보도.기사전송에는 아주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주목할 점은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점차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콸라룸푸르 중심가인 잘란 술탄 이스마일에 위치한 힐튼호텔내 로비에서 만난 사업가 마무드 (45) 는 "수만명이 시위를 해도 신문에 단 한줄도 안나는 곳이 말레이시아다.

무조건적인 개혁을 주장하는 '안와르 신드롬' 이 번지는 것도 억눌린 생활에 대한 국민들의 염증 때문일 것" 이라고 말했다.

경제위기가 계속될 경우 17년을 버텨온 마하티르 정권도 앞날을 장담하지 못한다는 얘기다.

23, 24일 이틀동안 기자가 접촉한 사람들중 상당수는 "안와르 굿맨, 마하티르 프라블럼 (안와르는 좋은 사람, 마하티르는 문젯거리)" 이라고 말했다.

견고해 보이던 말레이시아에도 변화의 조짐이 일고 있었다.

콸라룸푸르 = 진세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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