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제 개편은 ‘서민 행보’ … 부동산은 ‘규제 강화’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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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경제 정책의 근간은 ‘비즈니스 프렌들리’였다. 투자를 늘리고 기업의 경쟁력을 키우면 일자리가 늘고, 결국 서민의 삶도 좋아진다는 논리다. 지난 10년간 왜곡된 경제정책을 시장경제를 중심으로 정상화하겠다는 생각도 강했다. 하지만 최근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다. 대기업·부유층에서 물이 흘러 넘쳐 중소기업·서민에게도 혜택이 돌아가게 만드는 방식에서 서민을 직접 겨냥하는 식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특히 옳고 그름을 떠나 서민에게 정서적 반감을 일으키는 정책은 쑥 들어가는 경우가 많아졌다.

정부가 중도실용주의를 강화하면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세제 분야다. 서민에게 직접 혜택이 가지 않는 세제 개편은 일단 제동이 걸린 상태다. 지난해 정기국회를 통과하지 못한 상속·증여세 인하는 올해도 일찌감치 포기했다. 종합부동산세와 재산세를 통합하는 방안도 장기 과제로 돌렸다.

법인세와 소득세 인하는 이미 법까지 개정됐는데도 바람을 탔다. 올해와 내년 두 차례에 걸쳐 세율을 내리기로 했지만 내년 인하분을 유보하자는 주장이 정치권을 중심으로 나왔다. 정부는 법인·소득세율 인하는 이미 대내외에 약속한 것인 만큼 예정대로 추진한다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지만, 여전히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재정을 쏟아 부은 까닭에 재정 건전성이 나빠졌지만, 서민에게 부담이 가는 세금 인상은 자제하는 분위기다. 정부가 추진 중인 비과세·감면제도 축소가 서민에게 불리하다는 지적이 일자 윤증현 재정부 장관은 “경제적 약자인 중소기업이나 서민에게는 부담이 없을 것이므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조세연구원의 공청회에서 언급된 담배세와 주세 인상에 대해 국회와 여론이 서민 부담이 늘어난다며 반대하자 정부는 “올해 세제개편에 절대 포함하지 않는다”고 못박았다.

이러다 보니 세제개편은 주로 고소득층과 대기업에 대한 혜택을 줄이는 쪽으로 진행되고 있다. 대표적인 게 올해 말 종료되는 임시투자세액공제의 축소 또는 폐지다.

봉급생활자 소득공제도 고소득자들의 감면 혜택이 큰 항목을 중심으로 축소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예를 들어 고소득자들이 주로 이용하는 보약이나 성형수술에 대한 소득공제는 없어질 가능성이 커졌다. 신용카드 소득 공제도 도마에 올라있다. 현재는 카드사용액이 연봉의 20%를 넘으면 초과분의 20%를 최고 500만원 한도 내에서 공제해준다. 한도를 모두 채워 혜택을 받는 사람은 대체로 신용카드를 많이 쓰는 고소득층인 만큼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재정부 관계자는 “자영업자의 세원 투명성 확보라는 당초 목표가 달성된 만큼 줄이는 게 맞지만 워낙 반발이 심해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부동산 정책도 규제를 강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서울 강남3구(강남·서초·송파구)를 투기지역에서 해제하는 것은 이미 물 건너 갔다. 민간주택에 대한 분양가 상한제 폐지도 불투명해졌다. 정부는 대신 수도권 주택에 대한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을 60%에서 50%로 줄이는 등 대출을 조이기 시작했다. 그 대신 서민과 중소기업 등 사회 약자층을 대상으로 한 복지와 금융지원은 속도를 내고 있다. 신용이 부족해 은행에서 돈을 빌리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마이크로 크레디트를 크게 늘리는 등 서민금융을 대폭 강화할 계획이다. 2학기부터는 학자금 대출 금리가 연 1~1.5%포인트 낮아진다.

하지만 근본적인 서민대책인 일자리 문제는 여전히 뾰족한 대책을 찾지 못하고 있어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자칫 중도실용주의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성장이 위축되는 바람에 경제 전체가 쪼그라들고, 양극화도 해결하지 못한 과거 정권의 실패를 답습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최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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