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통령 방일때 무얼 주고받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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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다음달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 방일을 앞두고 일본측이 과거사 사과발언 수준을 확정, 통보해 오는 등 양측이 주고받을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우리측은 평년작 수준인 일본측의 '사과' '반성' 을 일본측의 판단에 일임하는 대신 경제위기 극복에 대한 일본의 수출금융지원 등을 적극 모색하는 '실리추구' 접근을 한 게 그 특색이다.

◇ 과거사 정리부분 = 일본측이 마음으로부터의 사과와 깊은 반성이라는 내용을 최종 확정, 정상회담 공동선언에 포함하기로 합의됐다.

과거사 문제에 가장 전향적이었던 사회당 무라야마 도미이치 (村山富市) 전 총리의 94년 담화에 준하는 수준이다.

무라야마 담화가 '아시아제국 (諸國)' 을 상대로 한 것인 반면 '한반도' 라는 단어를 삽입해 사과를 하는 점은 다소 진전된 부분. 신사 (神社) 참배 의원이 절반을 넘는 현 자민당 내각으로선 성의를 다했다는 게 일본측의 주장이다.

'진솔한 사과' 를 요구해 온 우리측도 이 선에서 사과를 수용할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일본측은 '군대위안부' 라는 각론의 표현은 공동선언에 넣지 않는데다 "천황은 현행 헌법상 정치적으로 이용할 수 없다" 는 논리로 일왕의 '과거사 정리 발언' 은 생략, 또는 '스치는 언급' 만 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 일본교과서 역사기술 = 우리측은 당초 과거사 문제에 대한 올바른 내용을 일본 교과서에 기술해 달라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양국 정부의 교섭결과 일본측은 "일본내에서도 좌파학자 등 과거사 정리 부분에는 각기 다른 견해가 존재, 교과서에 한 가지 해석을 담는 것은 곤란하다" 는 의견을 고수.

결국 우리측은 金대통령의 의회연설을 통해 "양국의 미래 동반관계를 위해 올바른 역사인식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이를 역사교육에 반영하는 게 필요하다" 고 촉구하는 선의 합의를 이뤘다.

◇ 정기각료 회담 = 양국은 각료회담을 정례화하기로 하고 10월말 또는 11월초에 첫 회담을 도공 심수관 (沈壽官) 4백주년 기념행사가 개최되는 일본 가고시마 (鹿兒島) 현 시가시이치키 (東市來) 부근으로 잠정 확정. 양국 문화교류의 상징적 장소를 택한 것이다.

특히 첫 회담인 만큼 김종필 (金鍾泌) 총리와 오부치 게이조 (小淵惠三) 총리가 참석하는 '중량급 행사' 를 추진 중이다.

한국의 경제난 극복에 대한 일본의 협력을 얻어낼 '직접 대화창구' 를 만든 셈이다.

우리측의 재경.산자.외교통상장관과 함께 일본측에서는 외상.대장상.통산상 등 경제각료들이 대거 참석키로 했다.

한.일 정기각료회의는 90년 이후 재일동포 지문날인, 일본정치인 망언 등으로 중단된 상태다.

◇ 한.일 어업협정 = 방일을 앞두고 양측이 '중간수역의 동쪽 경계선' 을 1백35도30분에 사실상 합의하는 등 급진전을 이루고 있다는 게 국회관계자의 전언. 한국측이 주장한 1백36도, 일본측이 요구한 1백35도의 절충점인 셈이다.

이 경우 우리측은 오징어의 주어장인 대화퇴어장의 80%를 '확보' 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특히 '기존 조업실적 보장' 에서도 양측은 연 15만t의 합의를 이룬 것으로 알려졌다.

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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