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쏘리쏘리~♪” 아빠들, 오빠가 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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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슈퍼주니어’ 멤버 성민(23)과 록그룹 ‘트랙스’ 출신 김정모(24)는 잠시 잊자. 그러고 보면 ‘오빠’란 말이 퍽 민망해진다. 리더 유영석(44) 등 나머지 멤버의 평균 나이가 41세다. 더구나 이들에겐 자녀까지 있으니 ‘오빠’란 말을 ‘아빠’로 바꿔도 무방하겠다. 신동엽과 탁재훈은 각각 20여년 전 고교 밴드로 활동했다. 한데 졸업하곤 악기를 잡아본 적이 없다. 그러니 연습실에선 수런대는 소리만 요란하다. 천재 뮤지션 유영석이 날뛰어본들 제대로 된 합주가 나올 리 없다. 그러므로 ‘밴드’란 근사한 말도 이들에겐 쉬 어울리지 않는다. ‘연주단’ 정도면 모를까.

‘오빠밴드’ 멤버들이 슈퍼주니어 콘서트 오프닝 무대에 오르기 전에 “우리는 오빠밴드예요”라고 외치고 있다. 평균 나이 41세, 아이 아빠가 멤버의 반을 넘지만 마음은 청년이다. 왼쪽부터 베이스 기타 신동엽, 키보드 유영석, 리드 기타 김정모, 드럼 탁재훈, 세컨 기타 성민, 매니저 김구라. [MBC 제공]

◆‘오’래 볼수록 ‘빠’져드는 ‘밴드’=고백하건대, 이런 고약한 심사로 ‘오빠밴드’를 만나러 나섰다. 슈퍼주니어 콘서트의 오프닝 무대에 선다기에 당치도 않다고 여겼다. 한데 이들의 일상을 뒤쫓으면서 그런 오해를 말끔히 씻었다. ‘오빠’라 불러도 무방할 만큼 활기찼고 연주 실력도 제법이었다. ‘오빠밴드’가 ‘오래 볼수록 빠져드는 밴드’의 줄임말이라는 제작진의 항변이 한바탕 농담은 아니었던 게다.

‘오빠밴드’는 19일 슈퍼주니어 콘서트의 오프닝 무대에 오르기로 했다. “관객 1만명 앞에서 무대 적응력을 키우자”는 매니저 김구라의 아이디어였다. 공연을 사흘 앞두고 소집령이 떨어졌다. 슈퍼주니어 ‘쏘리쏘리’의 록 버전을 부르며 춤까지 추라는 미션이었다. ‘아동 탁’이란 별명이 붙은 탁재훈이 하소연한다. “내가 볼 땐 이 공연 망해.” 하긴 아저씨가 아이돌 춤을 따라하는 일이 가당키나 한가. 곳곳에서 헐떡이는 숨소리가 들려온다.

‘오빠밴드’는 아마추어 밴드의 좌충우돌 성장기를 담아낸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카메라가 돌건 말건 멤버들의 연습 열기는 뜨거웠다. 아무래도 간판급인 신동엽의 부담은 더 클 수밖에 없다. 더구나 아내인 선혜윤 PD가 연출이다. 제작 현장에서 그는 기타만 잡으면 웃음을 잃고 진지해지곤 했다. “베이스 연주가 덜 익숙해서 그래요. 연주 실력이 늘면 많은 웃음을 드릴 수 있을 겁니다.” 아내가 연출자여서 불편한 점도 있을텐데. “멤버들이 제작진 흉을 보다가도 저만 나타나면 조용해져요. 하하.” 오전 8시부터 진행된 연습은 정오를 넘기고서야 마무리됐다.

◆1만명 “오빠밴드” 함성=공연 당일인 19일. 멤버들의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가사조차 헷갈리는 ‘아저씨’ 멤버가 수두룩해서다. “다들 가사 정도는 외워왔어야지….(신동엽)” “소리가 제각각이잖아. 연습한 거야?(유영석)” 대기실이 얼어붙는 순간 탁재훈의 바지 단추가 터졌다. 그러곤 객원 보컬인 서인영의 벨트에 대해 한 마디. “그 챔피언 벨트 내가 좀 차자” 우하하 웃음이 터지면서 금세 분위기가 누그러졌다.

오후 3시 45분. ‘오빠밴드’ 동영상이 나오면서 1만 관객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새떼 울음 소리같은 소녀 팬들의 함성이 들렸다. 초조해하던 멤버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쏘리쏘리’를 부르며 무대를 휘저었다. 객석에선 일제히 “오빠밴드”를 외치기 시작했다. ‘록필(Rock feel)’만큼은 단단한 ‘아빠’들이 미끈한 ‘오빠밴드’로 성장하는 모습이었다. 선혜윤 PD는 “음악을 소재로 한 시트콤 같은 느낌으로 봐달라”며 “최종 목표는 앨범을 내고 단독 콘서트를 여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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