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명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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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지난 93년 초가을 새 정부의 2차 공직자 재산공개 내용이 발표되면서 경기도 용인땅 수십만평이 연고없는 몇몇 공직자와 정치인들에 의해 매입된 사실이 밝혀져 눈길을 끈 적이 있었다.

이곳 일대가 일찍부터 흔치 않은 '명당 (明堂)' 으로 꼽혀온 곳이었기 때문이다.

명당의 조건 가운데 하나인 '황금닭이 알을 품고 있는 (金鷄抱卵)' 형상인데다 풍수 (風水) 의 요체인 음택 (陰宅) 과 양기 (陽基) 의 조화가 두드러진 곳이라는 것이다.

한데조선조 성종 (成宗) 때 편찬된 '동국여지승람 (東國輿地勝覽)' 에는 용인땅과 관련한 흥미로운 대목이 나온다.

과방 (科榜)에 오른 한 선비가 '이름도 숨기고 마음도 숨기기 위해' 용인땅을 찾아든 적이 있으나 이곳은 권부 (權府) 와 통하는 길목이어서 사람들의 왕래가 잦으므로 숨어살기에는 아주 부적합한 곳이라는 것이다.

그곳 땅을 매입한 까닭이 명당이기 때문이었는지, 권부와 통하는 길목이기 때문이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중 몇몇 사람들이 된서리를 맞았던 사실을 돌이켜보면 재래식 관점에서의 명당은 아니었던 셈이다.

명당은흔히 살아 있을 때는 삶에 필요한 여러 가지 좋은 조건을 골고루 갖춘 곳, 죽은 뒤에는 땅의 기운을 얻어 영원히 살 수 있는 곳을 일컫는다.

그러나 명당은 아무데나 있는 것도 아니고, 한때 명당의 조건을 갖췄다가도 환경의 변화와 함께 명당의 타이틀을 잃는 경우도 종종 있다.

한번 명당으로 꼽혔다 해서 영원한 명당일 수는 없다는 얘기다.

그래서 풍수를 체계적 학문으로 연구하는 한 학자는 자신과 가문의 발복 (發福) 만을 바라며 산소자리잡기에만 몰두하는 풍수는 풍수를 빙자한 잡술 (雜術) 일 뿐이지 결코 정통의 풍수가 될 수 없다고 단언한다.

풍수가 주장하는 바 '기 (氣)' 라는 것은 그 이치가 하늘과 땅과 사람이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다.

'풍수의 대가' 로 불렸던 노인이 세상을 떠나면서 묻힌 곳이 후대에 부귀영화를 가져다준다는 세속적 의미의 명당이 아닌 '자손대대로 건강하고 화목하게 살게 하는 자리' 라 해서 화제 (본지 9월 16일자 19면) 다.

우리네 삶의 부귀영화가 도무지 뜬구름 같고 온갖 환란만 자초하는 세상이니 후손들의 건강과 화목만을 기원하는 묘자리가 진정한 이 시대의 명당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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