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경찰 총기남용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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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부 (富) 와 첨단기술만이 선진국의 요건은 아니다.

국민이 안심하고 살 수 있도록 법과 질서가 지켜지는 나라가 선진국이다.

그런 의미에서 선진국이 되기 위한 요건 가운데 하나로 신뢰받는 경찰의 존재를 꼽는 것은 당연하다.

선진국 경찰의 대명사처럼 돼 있는 영국 경찰은 국민들로부터 깊은 신뢰를 받고 있다.

여론조사에서 경찰관은 가장 신뢰받는 직업으로 꼽히고, 청소년들의 장래희망직업 조사에서도 선호도 3위를 차지할 정도다.

1829년 런던경찰령을 제정, 영국 경찰제도를 확립한 로버트 필의 이름을 따 '보비' 또는 '필러' 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영국경찰관은 친절하고 신중하다.

짙은 감색 (紺色) 의 멋진 제복차림에 2인1조로 거리를 순찰하면서 길을 안내하기도 하고 때론 관광객들의 사진모델이 돼주기도 한다.

순찰할 때는 절대 빨리 걷지 않는다.

경찰관이 서둘러 걷는 모습은 시민들을 불안하게 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탈법.위법을 목격하면 마치 먹이를 본 야수처럼 신속하게 움직인다.

영국 경찰관의 또 한가지 특징은 거의 비무장이라는 사실이다.

무기라곤 허리엔 찬 길이 37㎝의 곤봉과 소형 가스분사기뿐이다.

원래는 곤봉뿐이었으나 지난 96년 흉포해지는 범죄자들에 대항하기 위해 가스분사기 소지를 허가했다.

이처럼 경무장으로도 활동이 가능한 것은 경찰에 대한 신뢰도가 높기 때문이다.

이밖에 경찰관을 공격하면 중벌 (重罰) 을 받는다는 점도 중요한 이유다.

이와대조적으로 미국 경찰관은 중무장에 총기사용이 자유롭다.

청소년들이 책가방 속에 총을 넣어가지고 등교할 정도로 총기소지가 일반화한 미국에서 경찰관은 부득이 총기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범인의 총에 맞지 않으려면 먼저 쏴야 하는 서부극과 같은 상황이다.

따라서 일반시민에게 경찰관은 존경스런 존재가 아니라 그저 두려운 존재일 뿐이다.

일반 미국인들이 경찰관을 '돼지 (pig)' 라는 경멸적인 표현으로 부르는 것도 그 때문이다.

최근 들어 경찰관의 총기남용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탈주범 신창원사건 이후 총기사용조건이 완화되면서 경찰관들이 총기를 남용하는 데 대한 비판이다.

총기사용 자체도 문제지만 사용미숙으로 인한 인명피해는 더 큰 문제다.

잘못된 총기사용으로 경찰은 존경심과 두려움 두가지를 한꺼번에 잃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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