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진혁 칼럼]우리는 뭘 하고 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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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북한이 인공위성인지 뭔지를 발사한지 불과 보름 남짓 지났건만 우리 사회는 급속도로 그 일을 잊어버리는 것 같다.

미국.일본에서는 청문회가 열리고, 총리.장관.의회의 발언이 연일 나오고, 일본의 경우 정보위성발사 등 구체적 대응체제를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고작 1백80㎞로 묶여 있는 한국형 미사일을 3백㎞로 늘려보자는 논의를 미국측과 벌이는 것 외에 무슨 대응노력을 하고 있는지 모를 지경이다.

북한이 비록 미사일이란 한정된 분야라도 인공위성 발사를 시도할 정도라면 그 군사력과 기술수준의 의미는 심각한 것이다.

북한의 그런 군사력과 첨단 군사기술이 궁극적으로 우리를 겨냥하고 우리를 압박하는 수단임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이런 북한의 미사일개발에 일본이 흥분하고 미국이 심각한 반응인데도 정작 가장 큰 위협을 받는 우리가 무덤덤하고 쉽게 잊어버리고 있다는 것은 우리가 대범한 것도 대담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이것은 우리가 못났기 때문에, 의식과 감각이 둔하기 때문에 또는 미국이 어떻게 해주겠지 하는 의타심 (依他心) 때문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아마 평양에선 지금 웃고 있을지 모른다.

자기네 발표에 우왕좌왕하고, 최고인민회의 하루 전까지도 김정일 (金正日) 이 주석이 될줄 알고 있던 우리를 두고 북한은 아마 웃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또 미사일로 우쭐해진 북한은 우리가 햇볕론이니 하며 은혜라도 베푸는 것처럼 말하는 것을 두고도 웃고 있을지 모른다.

인공위성까지 쏘았는데 누가 누구에게 은혜를 베풀어, 이런 사고방식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늘 우리의 잠재력과 기술이 크고 우수해 북한은 상대가 안된다고 믿어 왔다.

국내총생산 (GDP) 이 북한의 몇배, 수출은 몇배… 하는 식으로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압도할 수 있다고 믿어 왔다.

그러나 오늘날의 이 경제위기 속에서, 실업자홍수 속에서도 우리의 그런 자부심은 계속 유효한가.

과연 우리는 유사시 우리를 지킬 수 있는가.

북한의 미사일발사는 바로 이런 기본적이고도 절박한 문제를 제기한다고 볼 수 있다.

과연 우리는 이런 문제들에 대해 올바른 해답을 제대로 시도하고 있는지 자문 (自問) 해 봐야 한다.

당장 정부로서는 국민에게 미사일발사에 따른 종합상황설명이라도 해야 할 텐데 그런 노력도 없었다.

북한이 인공위성을 쏘아? 그런 능력까지 있어? 그럼 우리는 어떻게 되나? 이런 의문과 걱정을 많은 국민이 가졌을 것이다.

정부로서는 당연히 북한 미사일발사의 전말과 그것이 갖는 의미, 우리에 대한 위협정도, 우리의 대응정책과 대응능력… 이런 것을 설명하고 국민을 안심시키는 노력을 했어야 했을 것이다.

그리고 북한의 그런 능력을 알기 전에 마련된 대북정책이라면 수정문제를 검토해야 할 것이고, 새로운 안보상황을 야당에도 알려주고 공동대처하는 초당적 안보태세의 과시도 있었어야 했을 것이다.

정상적인 나라라면 최소한 이런 일은 국민눈에 보였어야 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지난 보름동안 우리는 뭘 하고 있었나. 그동안 우리의 가장 큰 뉴스는 사정과 의원 숫자놀음이었다.

과반수가 무너졌느니, 과반수를 확보했느니, 누구를 구속하고, 누가 탈당했다느니… 이런 얘기가 가장 큰 뉴스였다.

지도자들의 발언도 여기에 집중됐다.

북한 미사일은 제쳐두고 가장 열을 내고 관심을 집중시킨 문제가 바로 이것이었다. 물론 사정도 해야 한다.

그러나 사정은 국정의 본류 (本流)가 아니다.

사정은 검찰 등 사정당국이 1년 내내 상시적으로 냉철하게, 실무적으로 할 일이다.

청와대나 정치권이 사정을 하는 게 아니다.

청와대와 내각과 정치권은 국가경영과 국가건설이란 국정 본류에 전력을 쏟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사정이 국정의 가장 큰 일인 것처럼 정치권과 청와대까지 여기에 매달리고 정기국회마저 표류하고 있다.

북한미사일로 세계가 떠들썩한데 우리 국회는 이 문제로 열기 있는 토론 한번 제대로 안했으니 이래도 정상적인 나라인가.

게다가 지금 경제상황은 "…북한의 탱크가 구르지 않고 총알만 날지 않을 뿐 6.25전쟁에 버금가는 초비상사태" (조지워싱턴대 박윤식교수) 라는 진단이다.

안보와 경제보다 더 중요한 국정이 있을 수 있는가.

북한이 인공위성을 쏘아도, 경제가 초비상사태에 빠져도 이런 국정 본류에 초점이 모이지 않는 지금 상황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지금 우리는 뭘 하고 있는가.

빨리 할 일을 해야 한다.

정부와 정치권은 빨리 국정 본류로 복귀해야 한다.

송진혁(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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