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음반 재구성 '디제잉'의 현주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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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DJ하면 사람들은 우선 대통령을 떠올릴 것이고, 그 다음으로는 라디오나 클럽에서 음반 틀어주는 사람을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가요계에서 DJ하면 '음반들을 재구성해 새로운 음악을 창출하는' 음악인을 뜻한다.

그 주체는 대개 클럽에서 음반을 틀어주는 DJ들이다.

최근 '휘파람 별' 이란 테크노 솔로음반을 발표한 삐삐롱 스타킹의 전 리더 달파란은 베이스 기타를 당분간 '버리는' 대신 턴테이블 2개와 믹서만을 가지고 음악을 하는 '디제잉 (DJing)' 을 선언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홍대앞 라이브클럽에서 주말마다 '디제잉' 을 하는 달파란은 두장의 레코드를 동시에 튼뒤 믹서의 놉을 조절해 리듬을 맞춘다.

그리곤 한쪽 음반의 회전수를 줄이거나, 손으로 음반을 긁거나 (스크래치 기법) , 고.중.저음부 주파수를 멋대로 변조하는 방식으로 독특한 리듬감을 만들어낸다.

원곡의 분위기는 사라진 대신 '제3의' 느낌이 창출되는 것이다.

DJ음악 공연은 3~5분 단발의 묶음인 일반적인 대중음악 공연과는 많이 다르다.

우선 2시간 이상은 감상해야 '느낌' 이 온다.

멜로디보다는 리듬과 사운드의 반복적.파격적.즉흥적 진행 그 자체를 즐기는 것이기 때문. 청중이 일어서서 자유롭게 감상하는 것도 다른 점이다.

음악의 반복과 여백이 주는 이미지나 가상현실에 '참여' 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재즈의 잼 (장시간 즉흥연주) 과 비슷하다.

DJ음악은 기존 발표곡의 특정소절에 다른 곡의 소절.리듬을 덧입히는 이른바 '샘플링' 기법에 기초를 두고있는 첨단 컴퓨터의 산물이다.

그런데 문학의 '혼성모방' 을 연상시키는 DJ음악은 과연 창조일까. 헤비메탈그룹 블랙신드롬의 제작자 박강원씨는 "창조가 아니라 기술에 불과" 하다며 "기술만능, 텍스트홍수 시대라해도 음악의 진정한 정신은 인간의 새로운 작곡과 연주" 라고 반박한다.

그러나 '휘파람별' 홍보담당자 송홍섭씨는 "팝음반 홍수인 지금은 신곡마다 '기청감 (旣聽感 : 언젠가 들은 느낌)' 이 느껴진다.

DJ음악은 창작의 여지가 고갈된 시대의 돌파구다.

과거 발표곡을 소재로만 활용할 뿐 그것을 독자적 리듬과 효과음으로 재구성한다" 고 주장한다.

물론 이 말의 전제는 재구성이 일정수준 이상의 미학을 갖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다만 기존음계를 벗어난 각종 소리를 마음껏 활용하는 음악이란 점에서 DJ음악의 자유성은 인정돼야 할 것 같다.

80년대 DJ음악이 발원한 서구.일본에서는 DJ음악이 독자적 미학을 지닌 장르가 된지 오래다.

영국에서는 지난해 DJ섀도우가 음반 판매고 수백만장의 빅히트를 기록했고, 일본에서도 DJ혼다.DJ크러시.DJ토와테이등이 당당한 음악인으로 인기를 얻고있다.

국내에는 아직 DJ음악이 생소하지만 대중적 가능성은 많다고 경력 12년의 전문DJ이자 김현정.유승준등 댄스가수 리믹스 전문가 김현성씨는 말한다.

직업의 특성상 DJ들이 대중성 있는 음악의 조합에 능하다는 의미다.

다시 그의 언급 - "스모경기의 '쉬잇!' 같은 소리까지 차용해서 다양한 음악을 펼치는 일본DJ들처럼 우리도 국악의 한소절을 딴뒤 베이스.드럼등 서양악기 샘플을 이용해 DJ음악을 만들면 서구에 자연스럽게 소개할 길이 열린다."

강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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