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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 걸고 찍었다, 시속 90㎞ 썰매 타고 …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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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순수한 사람이 좋고, 악인없는 영화가 좋다”는 김용화 감독. “관객이 공감하는 한도내에서 최대한 판타지를 주는 것이 내 영화”라는 그는 “흥행 여부를 떠나 영화가 완성되기까지 도와준 많은 사람들에게 포만감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영화사 ‘KM컬처’ 제공]

662만명을 동원한 ‘미녀는 괴로워’로 코미디로는 최고 흥행 기록을 세운 김용화(37) 감독. ‘오 브라더스’ ‘미녀는 괴로워’로 웃음과 눈물이 황금비율을 이루는 휴먼코미디의 가능성을 열어온 대표주자다. 그가 이번에는 스포츠영화에 도전했다. 세계 꼴찌의 성적이지만 10여년간 국내 유일의 팀을 꾸려온 스키점프 국가대표선수들의 이야기다. 실화에 기초한 ‘국가대표’는, 감독의 전작답게 감동과 유머, 세련된 영상미와 풍성한 음악이 적절히 직조된 대중영화로 완성됐다(30일 개봉).

해외입양아 출신 주장인 헌태 역의 하정우를 제외하고는 김동욱, 김지석 등 주요배역이 전부 신인들. 순제작비 72억원으로, 국내 스포츠영화의 빈약한 전통 속에서도 고도의 촬영테크닉, CG 기술을 순전히 국내에서 해결하면서 웰메이드 스포츠 블럭버스터로서의 면모도 보인다. 23일 삼청동에서 만난 김 감독은 “비인기 종목으로서 아직도 스키점프 국가대표팀은 평소에 막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며 “이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환기시키는데 기여하고 싶다”는 소망도 밝혔다.

◆스포츠 장르영화의 매력=“5년째 표류하던 이 아이템을 건네받고 스키점프팀이 나온 10분짜리 다큐를 봤다. 점프하는 모습에서 극복·도약·상승의 강렬한 이미지가 느껴졌다. 주변에서 흔히 만나는, 사연있는 인물들이라 이들을 통해 삶을 은유하면서, 스포츠의 비주얼을 잘 살리면 되겠다 싶었다. 1년간 이들을 취재했고 2년간 올림픽 등 세계대회들을 쫓아다녔다. 물론 영화적 상상력으로 가공된 부분도 많다. 입양아 스키선수 토비 도슨, 네덜란드의 입양아 출신 한인 레이서 등의 사연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또 내가 중학교 때까지 태권도를 해 강원도 대표로 전국체전에서 메달딴 적도 있어, 그때 경험도 영화에 녹였다.”

◆한국 스포츠영화의 새 가능성=“우리 영화가 4800컷에 CG만 1000컷이다. 컷수나 CG량이나 ‘트랜스포머’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해외 경기장면들은 독일 세계 대회와 미국 솔트레이크 올림픽때 찍은 기본 소스에 CG를 입혔다. 실제 촬영은 강원도 평창과 무주에서 했는데, 배우들은 출발대기만 하고 나머지는 선수들이 직접 뛴 다음 얼굴을 바꾸는 ‘페이스오프(face-off)’ 기법을 썼다. 와이어를 매긴 하지만 50~60m 높이에서 출발대기하는 것만도 극도의 공포감이 느껴진다. 막내인 봉구(이재응)는 소변을 지릴 정도였다. 점프대를 빠르게 활강하면서 롤러코스터타듯 아래를 내려다보는 장면은, 스태프가 탄 썰매를 시속 90㎞로 떨어뜨리며 찍었다. 경기 장면이 어설프면 안되기 때문에 목숨 걸고 찍은 위험한 장면도 많았다. 위험성과 제작비 때문에 철저한 사전준비가 필수였다. 국내 CG팀과 1년간 사전 시뮬레이션하면서 컷트와 카메라 위치 등을 계산했다.”(그 덕에 72억원으로 찍은 영화는 100억대의 ‘때깔’이 난다는 평을 받았다).

◆벅차서 눈물 흘리는 영화=“오스트리아, 독일 등 스키 강국의 전폭적 지원도 받았다. 세계스키협회는 정작 대회에서는 꼴찌하는 나라가, 스키가 국기인 나라에서도 안 만들고 못 만드는 스키영화를 찍는다는 것에 큰 매력을 느끼고 자문·촬영협조·출연 선수 섭외를 적극적으로 도왔다. 입양아로 엄마를 찾으러 온 헌태 등 최루성 사연이 많지만, 감정의 과잉을 자제하려 했다. 이 영화를 통해 슬퍼서 눈물나는게 아니라 벅차서 눈물나게 하고 싶었다. 슬프게 울리는 건, 어찌보면 간단하다. 주인공을 죽이면 되니까. 멋있는 것도 아니고 잘난 것도 아닌 극중 인물들을 따라가면서 관객들이 제 삶을 대비시켜보고, 마지막 하이라이트에서 점프 하나하나마다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을 느끼게 하자, 이게 연출의 포인트였다. 신파가 아닌 감정의 벅참을 주는 영화랄까.”

◆이름값 배우보다 똑똑한 배우=“처음엔 주인공 5명 전부를 신인으로 갈 생각이었다. 신인으로 가면 부담은 되지만 영화의 생명력은 훨씬 커진다. 배우의 티켓 파워? 없다고 본다. 사전 인지도를 높이는데 영향은 미치지만 영화의 본질을 바꾸지는 못한다. 공개 오디션을 통해 김지석, 김동욱 등 4명을 뽑았는데 캐스팅 기준은 ‘똑똑한 배우’였다. 배우들은 연기 잘하면 되지, 잘 생긴 거 중요하지 않다. 연기를 잘해서 배역이 사랑스러워지면 절로 잘 생겨 보이니까. 사실 나는 주연보다는 조·단역에 훨씬 신경쓰고, 잘하는 배우들을 모셔온다. 카메오로 출연한 김수로·김용건·오광록·박정수·이혜숙씨가 그렇다. 주연이면, 감독이 바보가 아닌 한 2시간 러닝타임 속에 그들을 관객에게 충분히 이해시킬 수 있다. 오히려 한두장면 짧게 나오는 배우들이 탄탄한 연기를 해야 전체가 산다.”  

양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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