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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당 정치’ 시대로 접어드는 일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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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전후 일본에서 자민당은 실리 중시의 경제성장 전략으로 장기집권을 할 수 있었다. 55년 당시 자민당은 경제 중시, 미국 중시의 요시다 노선과 이데올로기 중시, 대미(對美) 독립 지향의 반요시다 노선이 보수합동을 해 성립됐다. 50년대만 하더라도 자민당의 하토야마, 기시 총리가 헌법 개정을 주장하는 과도기적 상황이 존재했다. 하지만 61년 이케다의 소득배증 정책이 성공하면서 경제 중시의 요시다 노선이 정착하게 됐다. 이후 일본은 자민당 정권하에서 고도성장을 이룩하면서 정치 안정을 이뤘다. 찰머스 존슨은 “일본의 경제 기적은 관료의 발전지향적인 정책 덕분”이라고 했지만, 관료에 대한 자민당의 지지가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고도성장기의 자민당은 경제성장의 파이를 농민·자영업자 등에게 분배하면서 정치적 지지를 얻어내는 이익유도정치를 발전시켰다. 또한 자민당은 사회당과 밀실타협을 통해 사회당이 만년 야당에 안주하도록 하는 ‘55년 체제’를 완성시켰던 것이다.

굳건해 보이던 자민당 체제도 90년대에 들어서면서 이완되기 시작했다. 우선 탈냉전으로 사회당이 몰락하면서 55년 체제는 붕괴됐다. 둘째, 세계화와 장기불황으로 일국성장주의가 어렵게 되면서 기존 지지층과의 갈등이 심화됐다. 셋째, 걸프전 이후 ‘피의 국제공헌’이라는 국제적인 요구를 맞아 전수방위정책은 한계를 보이게 됐다. 이 과정에서 자민당 체제에 대한 개혁 요구는 점차 거세졌으며, 결국 자민당은 “자민당을 붕괴시키겠다”고 공언한 고이즈미를 총리로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고이즈미의 신자유주의 개혁은 자민당의 조직표를 와해시켜 자민당 하부 조직을 이탈하게 만들었다. 또한 고이즈미의 후임자이자 기시 전 총리의 외손자인 아베가 ‘전후 정치의 탈피’를 부르짖을 때 장기불황에 찌든 일본 국민은 자민당의 안이한 현실 인식에 등을 돌리게 되었다. 더욱이 자민당이 급한 불을 끄기 위해 자신의 정치적 기반이던 관료층에 책임을 전가하기에 이르자 자민당 정치는 기댈 곳을 거의 상실하게 되었다.

그 결과 다음 달 중의원 선거에서는 자민당의 경제살리기 구호보다 민주당의 정권교체 주장이 더 설득력을 갖게 될 것으로 보인다. 선거를 계기로 일본정치는 자민당 체제에서 벗어나 양당정치가 본격화될 가능성이 높다. 일본에서 양당정치가 구현되는 것은 새로운 패러다임의 전개를 의미하지만, 그렇다고 일본정치가 명확한 비전을 갖게 되는 것은 아니다. 앞으로 어떤 정당이 정권을 잡든 내년 참의원 선거까지는 서로의 정책을 시험하는 기간이 될 것이다. 특히 민주당은 정권을 잡게 되면 ‘관료체제’에서 ‘정치 우위’로 개혁을 하겠다고 예고하고 있다. 그렇게 되면 관료와의 갈등은 불가피해지고, 새로운 시스템이 정착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고 시행착오도 겪게 될 것이다. 자민당도 내년 참의원 선거에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기 위해 끊임없이 민주당을 공략하려고 시도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나타나는 민주당과 자민당의 포퓰리즘적인 정책 경쟁이 일본의 미래를 불투명하게 할 수도 있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