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퇴행적 민주당, 미숙한 한나라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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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어제 대한민국 국회는 다시 한번 퇴행적인 모습을 보이고야 말았다. 미디어법은 선진화를 위한 대표적인 개혁법안인데 국회는 이를 가장 후진적인 방법으로 처리해야 했다. 제1 야당 민주당은 법안이 제출된 이래 7개월여 동안 상임위 토론과 협상을 위한 절차를 거의 모두 거부해왔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본회의 직권상정뿐인데 당은 이마저 물리적으로 방해해 어제의 소동을 빚고 말았다. 의원·보좌진·당직자들은 회의장 문을 쇠사슬로 막고 한나라당 의원의 진입을 봉쇄했다. 국회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언론노조 노조원들은 창문으로 본청에 진입해 민주당의 집단농성에 합류했다. 일부 농성자는 국회 경비원들에게 소화기를 뿌리기도 했다. 소화기 분말은 의회민주주의와 제1 야당에 뿌려진 치욕의 분말이다.

민주당의 이런 파행은 일과성이거나 단편적인 게 아니다. 당은 대선과 총선에서 참패해 정권과 의회권력을 잃었다. 유권자의 뜻은 민주당이 후진적 ‘이념 병’에서 벗어나 선진적 실용을 갖추라는 거였다. 그러나 당은 이명박 정권이 흔들리는 틈새를 보이자 다시 이념의 창을 꺼내 들고 불복 투쟁을 벌여온 것이다. 쇠고기 촛불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투신 사태 때는 의원들이 직접 거리 투쟁에 나섰다. 국회에서는 해머와 전기톱으로 시설을 부수고, 당직자가 한나라당 의원을 패고, 툭 하면 회의장들을 점거했다. 각질화된 이념이 아니라 성장과 복지의 실용노선을 찾아보겠다던 ‘뉴 민주당 플랜’은 이미 사라지고 없다. 지도자는 이상한 단식을 하고 일부 의원은 사표를 내겠다고 한다.

한나라당은 집권 다수당답지 못한 미숙한 모습을 보였다. 다수결 원칙을 지키기 위해 직권상정 처리를 결의했다면 처음부터 의결정족수 의원이 모였어야 했다. 한나라당이 숫자를 채우려고 시간을 끄는 바람에 폭력이 커지고 말았다. 사회를 맡은 이윤성 부의장이 의결정족수를 확인하지도 않고 표결 종료를 선언하는 바람에 재투표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런 정도의 의식 상태와 책임감으로 중요한 국정을 결행할 수 있는 것인지 지켜보는 시선이 불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