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멋 따위는 가라 속도감 + 편안함 귀한 녀석이 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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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수퍼카의 전설 닛산 GT-R이 한국에 왔다. ‘누구나, 어디서나, 언제나 즐길 수 있는 최고의 수퍼카’를 컨셉트로 개발된 이 차는 3.8L 트윈터보 V6 엔진을 달고 있다. 최고 485마력의 출력을 내 시속 280㎞ 이상 달릴 수 있다. 4인승으로 제작하기 위해 말 안장 모양의 기름 탱크를 세계 처음으로 달았다. 실내는 웬만한 고급차보다 더 고급스럽다. 뒷좌석은 어른 두 명이 탈 수 있다.

일본의 닛산은 1990년대 중반까지 ‘기술의 닛산’으로 불렸다. ‘판매의 도요타, 엔진의 혼다’로 대표되는 시절이었다. 하지만 2000년 르노에 인수된 이후 카를로스 곤 회장 체제 아래 강도 높은 비용절감에 들어가면서 시대를 앞서가는 기술은 점점 사라졌다. 신기술보다는 많이 팔리는 차에 치중했다. 르노와 플랫폼 공유를 통해 닛산의 특질마저 없어졌다. 급기야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도요타에서 사다 쓰는 일도 벌어졌다.

이런 역경을 딛고 신기술을 대거 채용해 ‘기술의 닛산’ 부활을 알린 차가 바로 2007년 도쿄 모터쇼에 선보인 GT-R이다. 60년대 이후 일본 최고의 스포츠카 명맥을 이어가는 GT-R은 일본 국기를 상징하는 붉은색 히노마루 형태의 브레이크 등으로 유명하다.

이달 초 국내에 선보인 이 차의 가격은 1억4900만원. 독일 수퍼카에 비교하면 저렴(?)한 편이다. 4인승에 4륜 구동으로 가족들을 태울 수 있다. 500마력에 가까운 고성능 출력을 특별한 드라이빙 기술 없이도 누구나 손쉽게 즐길 수 있는 게 특징이다. 국내에는 연간 35대만 한정판매한다.

닛산 GT-R은 “누구나, 어디서나, 언제나 즐길 수 있는 최고의 수퍼카”라는 컨셉트로 개발됐다. BMW M시리즈처럼 날카로운 핸들링의 맛은 없지만 한마디로 편안하게 탈 수 있는 스포츠카라는 점이 매력적이다. 수작업으로 만들어진 3.8L 트윈터보 V6 엔진(엔진명:VR38DETT)을 달았다. 485마력의 최대출력과 60kg/m 최대토크를 낸다. 6단 듀얼 클러치와 하나로 된 사륜구동 시스템이 더해져 주행 성능이 탁월하다. 연비는 상상외로 좋다. 7.8㎞/L의 한국 공인연비를 받았다. 재밌는 차체 구조는 말 안장(새들 백) 모양으로 생긴 기름 탱크다. 네 명이 탈 수 있게 설계하면서 차체 뒷부분에 기름 탱크를 놓을 자리가 마땅치 않았다. 엔지니어가 고민을 거듭한 끝에 말 안장에서 아이디어를 착안해 후륜 변속기 사이에 기름 탱크를 걸쳐 놓았다. 인간의 개선 의지가 빛난 대목이다.

GT-R은 이미 여러 가지 상을 휩쓸었다. 영국의 자동차 전문지 모터트렌드의 ‘2009 올해의 차’, 웟카(What Car)가 선정한 ‘2009 올해의 퍼포먼스카’ 등이다.

스포츠카 개발의 마지막 관문인 독일 뉘르부르그링 노드슈라이페 서킷에서 GT-R은 최근 7분26초70의 랩 타임(서킷 한 바퀴를 도는 데 걸린 시간)을 기록해 다시 한번 수퍼카 신기록을 단축했다. 90년대 초 닛산은 20㎞가 넘는 노드슈라이페 서킷에서 GT-R의 주행 성능을 자랑하다 불과 10여 바퀴 만에 브레이크가 과열돼 중도에 포기해 망신을 당한 경험도 있었다. 당시만 해도 일본 스포츠카들은 독일차에 비해 차체 강성과 브레이크에서 뒤져 있을 때다. 이런 격차는 2000년 이후 급격하게 줄었다. 적어도 GT-R은 유럽의 수퍼카와 대등한 실력을 보여준 셈이다.

올해 눈길을 끌 또 다른 4인승 수퍼카는 포르셰 파나메라다. 올해 말 한국 출시 예정인 파나메라S는 8기통 4800cc 엔진을 달고 최고 속도는 시속 283㎞, 최고 출력은 400마력이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도달하는 시간(제로백)은 5.4초에 불과하다. 기본 가격은 2억원이 넘을 것으로 보인다.

김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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