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F ‘북핵 5자협의’ 이뤄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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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북핵 문제를 다루는 외교 무대가 태국의 휴양지 푸껫으로 옮겨졌다.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과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 양제츠 중국 외교부장 등 북한을 뺀 6자회담 당사국들의 외교장관들이 모두 푸껫에 모였기 때문이다. 동아시아정상회의(EAS)를 시작으로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까지 일련의 각종 외교장관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북한도 박의춘 외상 대신 박근광 외무성 본부대사(차관급)를 단장으로 하는 대표단을 21일 푸껫으로 보냈다. 이번 ARF 회의는 북한이 5월 2차 핵실험을 강행한 이후 처음으로 관련국 외교 장관급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기회다.

특히 이번 ARF 무대에서 관심을 끄는 것은 새로운 대북 접근법으로 부상한 이른바 ‘포괄적 패키지’ 구상이다. 커트 캠벨 미 국무부 동아태담당 차관보는 ARF 참석에 앞서 들른 서울 방문길에서 “북한이 (비핵화에 관한) 진지하고 되돌릴 수 없는 조치를 취한다면 북한이 매력을 느낄 만한 포괄적 패키지를 제공할 수 있다”고 밝혔다. 캠벨 차관보의 발언은 오바마 행정부가 출범 초기 6개월 동안 검토한 끝에 마련한 새로운 대북 정책의 골간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는 핵폐기에 이르는 북한의 단계별 조치와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주축으로 하는 기존 6자회담의 협상 방식을 지양하고, 처음부터 최종 목표인 핵폐기 조치까지를 포괄해 협상한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이 같은 밑그림을 바탕으로 구체적인 설계도를 완성하는 것은 앞으로의 몫으로 남아 있다. 정부 당국자는 “한·미, 한·중 간에 다양한 경로로 논의가 이뤄지고 있지만 아직 구체적인 모습을 갖춘 단계는 아니다”고 말했다. 따라서 이번 회기 중에는 ARF 본회의 못지않게 한·미 외교장관 회담 등 6자회담 관련국 간의 양자 대화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을 제외한 5개국이 한자리에 모이는 5자 회동은 중국의 신중한 태도로 성사되지 못했지만 ARF 회담이 실질적인 5자 협의의 장을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밖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1874호 대북 제재결의안의 이행 방안 논의도 중요한 현안이다. 대북 금융 제재나 선박 검사 등을 통한 무역 제재가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협력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 외교장관들은 20일 회담에서 “북한이 안보리 결의를 준수하고 6자회담에 복귀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의 의장성명을 채택했다.

◆북한 대표 “미국과 만날지 상황 봐야”=이번 회의 기간 중 북·미 간 접촉이 이뤄질지도 관심의 대상이다. 북한 대표단의 일원인 리동일 외무성 군축과장은 21일 푸껫으로 향하는 기내에서 동승한 일본 취재진이 미국과의 접촉 여부를 묻자 “현지에서 상황을 봐야 알겠다”고 답했다. 한편 이날 오후 타이항공 TG217편으로 푸껫공항에 도착한 북한 대표단은 비행기에서 내리지 않고 기내에서 대기하다가 주기장 안으로까지 들어간 보안차량 편으로 취재진을 따돌리고 숙소로 향했다.

푸껫=예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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