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로 또 같이] 쇼호스트 김보천·이숙종 부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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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중앙 홈쇼핑 쇼호스트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말재주를 지녀야 한다. 한정된 시간에 더 많은 상품을 팔기 위해서 제품에 대한 공부도 필수다. 철두철미하지 않으면 도태되기 때문이다. 깐깐한 쇼호스트끼리 만나 결혼을 했다.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은 ‘원 플러스 원’ 대박 상품일까.

비슷비슷한 홈쇼핑 방송에 ‘물건’이 떴다. 파는 제품은 행 어, 신발 정리용품 등 이미 다른 곳에도 판매하는 흔한 생 활용품이지만 프로그램 자체가 별나다. 일단 제목부터 튄 다. ‘우리 진짜 결혼했어요’. 제목만 들어서는 인기리에 방 영 중인 리얼 버라이어티 쇼 ‘우리 결혼했어요’의 ‘짝퉁’ 버 전인 듯하나 실제 부부인 CJ오쇼핑의 김보천(33)·이숙종 (33) 쇼호스트가 진행하는 판매 방송이다. 생활 속에서 부 부에게 일어날 만한 에피소드를 VCR로 보여주고 세트장 에서는 상품 소개를 하는 방식. 방송 분량 중 30%는 실제 이들의 서울 문래동 신혼집에서 촬영한다.

“홈쇼핑은 방송 시간이 판매량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데 저희 방송은 평일 오후에 시작해요. 뭘 팔아도 매출이 썩 나오지 않으니 특별한 포맷으로 시청자들의 시선 좀 잡아보라고 해서 기획하게 됐어요. 부부 쇼호스트가 방송 을 함께 진행하는 건 우리가 처음일 겁니다.”

두 사람은 사내에서 처음 만나 연애를 하고 지난해 11월 결혼에 골인했다. 동갑내기지만 처음 만났을 당시 남편은 까마득한 8년 차 선배, 아내는 막 입사한 새내기 후배였 다. 첫눈에 반한 남편 김보천씨가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결혼을 진행시켰다. 사귄 지 3개월 만에 양가에 인사를 2 가고 그로부터 4개월 후 결혼식을 올렸다.

대개 부부가 같은 직장에 다니면 좋은 점보다 불편한 점이 더 많다. 괜히 회사에 눈치도 보이고 이래저래 신경 쓸 일, 조심할 일이 생긴다. 그런데 이들의 회사에서는 부부 티를 더 내라고 난리다. 부부가 닭살을 떨수록, 또는 툭탁거릴 수록 판매량이 오르기 때문. 동료 유부남 쇼호스트들은 그 런 그에게 부러움 반 질투 반의 반응을 보인다. 그러나 부 부는 함께 일하니 재미있다고 입을 모은다.

“아내와 저는 담당하는 상품군이 완전히 달라서 원래대로 라면 몇 년이 지나도 같이 일을 할 수 없었을 거예요. 그런 데 일을 함께 진행해보니 색다르네요.”

“저는 솔직히 처음에는 남편과 같이 일을 하고 싶지 않았 어요. 생방송이다 보니 어떤 일이 발생할지 모르는데 한참 후배 입장인 제가 실수라도 하면 남편 입장에서 얼마나 난 처하겠어요. 그런데 막상 해보니 걱정했던 거보다는 재미 있어요.”

부부라 가능한 까마득한 후배의 멘트 투정


부부는 매출도 매출이지만 재미도 살려야 해서 고민이 많 다. 아내가 물건을 사용해 본 주부의 입장을 대신하고 남 편이 쇼호스트로서 상품의 장점을 전달하기로 각자의 역 할을 정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자취 생활을 오래한 남편의 손끝이 더 야무지다. 게다가 하는 일이 일이다 보니 아줌 마 감성을 이해하는 데 도사가 다 됐다. 그는 쇼호스트라 는 직업에 만족한다. 트렌드에 민감하고 사람들 앞에 서는 걸 좋아하는 그에게 딱 알맞은 직업이다. 아내 이숙종씨도 만족하기는 마찬가지. 연기자로 활동하다가 지난해 쇼호 스트로 전향했는데 해보니 여자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직업이라고.

“쇼호스트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춰 담당하는 상품군이 달 라져요. 나중에 아이를 낳으면 아기용품도 맡아 할 수 있 고, 또 세월이 흘러 시어머니가 되면 꼼꼼하게 짚어주는 입장에서 방송을 하게 될 수도 있겠죠.”

단점은 지금처럼 부부가 같은 방송을 진행할 경우다. 사적 인 공간을 촬영장으로 쓰다 보니 편안해야 할 집이 회사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단점은 녹화 전에는 절대 부부 싸움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 아무리 화 가 나도 방송이 다음 날 잡혀 있으면 각자 말을 자제한다. 문득 인터뷰 중 배우자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참지 말고 해보라 청했다. 그러자 남편이 슬며시 불만을 털어놓 는다.

“원래 홈쇼핑 방송은 대본이 없어요. 쇼호스트가 대략의 큐시트만 보고 알아서 멘트를 해야 하는데, 당연히 9년 차 인 제가 이제 2년 차인 아내보다 말을 더 많이 하겠죠. 그 러면 방송 끝난 후 ‘왜 자기 말을 중간에 자르느냐’ ‘왜 멘 트를 자신보다 더 많이 하느냐’는 등 아내가 투덜대요. 이 런 후배 보셨어요?”

선배에게 대드는 후배와 매주 방송을 한다는 김보천씨. 그 러나 그는 알고 있다. 아내가 자신 이외의 선배에게는 깍 듯하다는 사실을. 그래서 아내에게 하나라도 더 알려주려 고 노력한다. 아내도 남편에게 작은 것부터 꼼꼼하게 배워 나가고 있다.

“매출이 확 떨어지지 않는 한 부부 진행을 계속할 듯해요. 하고 있는 일에서 재미있다, 잘한다는 말을 듣고 싶어요. 그동안 남편이나 저 둘 다 각자의 몫을 열심히 해야죠.”

“저는 거의 모든 상품을 다 팔아봤어요. 하지만 아내는 아 직 상품군이 협소해요. 이번 방송은 아내한테는 풍부한 경 험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예요. 저는 모든 가르침이 도제 식으로 이뤄지는 쇼호스트 세계에서 아내에게 많은 걸 전 수해 주고 언젠가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고 싶어요.”

선배와 후배로 만나 부부가 되었지만 크게 달라진 점은 없 다. 밀어주고 끌어주는 선후배에서 함께 걸어가는 평생의 동반자로 서 있는 위치가 조금 바뀌었을 뿐이다.

취재_윤혜진 기자 사진_박영하(studio lam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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