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층 꿈꾸는 옛 봉은사 땅 … 38년간 1만 배 올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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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한국전력공사는 땅 부자다. 전국에 분당 신도시와 맞먹는 1650만㎡(500만 평)의 땅을 보유하고 있다. 장부가로만 3조4809억원에 이른다. 알짜는 서울 강남구 삼성동 본사 부지 7만9342㎡이다. 한전이 땅 부자가 된 것은 변전소가 들어선 변두리 땅이 도시개발이 되면서 대거 노른자위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한전은 땅 개발을 오래전부터 검토해왔다. 엄청난 개발이익이 기대되기 때문이다. 김쌍수 사장은 “한전 본사의 경우 시가가 1조2000억원 정도인데 이를 개발해 매각하면 5조원 이상은 받을 수 있다”고 밝힌 적이 있다. 혐오시설이라는 이유로 주민들이 변전소 이전을 요구하는 것도 한전이 개발을 검토하는 배경이다. 삼성동 본사의 경우 공공기관 지방 이전 계획에 따라 2012년 전남 나주로 본사를 옮겨야 하는 사정도 있다. 한전으로서는 부동산 개발로 수익을 창출하면 발전소 건설이나 해외사업 등의 투자재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정부를 설득하고 있다. 김 사장은 “전기사업만으로는 수익창출에 한계가 있다”며 “부동산 개발로 투자재원을 마련하면 그 이익이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전은 지난해부터 부동산을 개발할 수 있도록 공사법 개정을 추진해왔다.

삼성물산·포스코건설도 눈독
한전 삼성동 부지는 민간사업자도 눈길을 주는 곳이다. 삼성물산 건설 부문과 포스코건설은 올 2월 한전 부지를 114층 오피스 빌딩, 호텔, 갤러리 등 복합단지로 개발하는 내용의 사업제안서를 강남구청에 제출했다. 제안서에 따르면 한전 본사 부지와 서울의료원(3만1657㎡), 한국감정원(1만989㎡) 부지에 건립되는 복합단지에는 114층 규모의 랜드마크타워와 75층, 50층짜리 빌딩 3개 동 등이 들어선다. 강남구는 이 제안서를 토대로 서울시와 한전, 무역협회 등과 협의해 민간제안형 도시개발사업으로 추진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오피스와 쇼핑몰, 호텔, 콘서트홀 등 상업·업무·문화시설이 들어서면 뉴욕 맨해튼이나 일본 롯폰기힐스를 능가하는 명소가 될 것이란 게 당시 민간사업자와 강남구가 내린 결론이었다. 한전도 서울시의 대규모 부지 용도변경 방침에 따라 지난 3월 강남구청에 본사 부지의 용도지역 변경(제3종 주거지역→일반상업지역)을 신청했다.

그러나 정부는 개발 계획에 부정적이다. 부동산 개발이 전력사업자 본연의 업무에서 벗어난 일이고, 다른 공기업과 형평성 문제도 있다는 것이 이유다. 서울시 역시 정부가 개발을 허용한 뒤에나 용도변경을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한전은 서울시와 강남구청, 민간사업자들이 적극 나서줄 것을 은근히 기대하고 있다.

70년대 상공부 단지 입지로 선정
한전 본사 부지 일대는 옛 상공부가 야심 차게 개발을 추진한 땅이다. 1970년 당시 이낙선 상공부 장관은 정부의 인구분산 정책에 따라 상공부와 상공부 산하기관이 모두 들어갈 수 있는 대규모 종합청사를 건립하겠다며 서울시에 부지 물색을 의뢰했다. 특허국 표준국을 비롯해 한전·석탄공사·종합제철·대한중석·광업진흥공사 등 12개 기관을 이주시키겠다는 구상이었다. 손정목 전 서울시 도시계획국장에 따르면 당시 서울시는 도시계획상 필요하다는 이유를 들어 4억3000만원(3.3㎡당 4300원)에 봉은사 앞 땅을 모두 사들이기로 조계종 측과 계약했다. 그러나 잔금을 치를 때쯤 상공부가 서울시를 불신하자 서울시는 계약서·영수증 등 모든 서류를 넘기고 손을 뗐다. 조계종 측은 그때 가서야 이 땅에 상공부 종합청사가 들어선다는 것을 알고 3.3㎡당 1000원씩 올려달라고 요구했다. 우여곡절 끝에 조계종은 70년 10월 5억3000만원(3.3㎡당 5300원)을 받고 봉은사 땅 10만 평을 한국전력 등 상공부 산하기관에 넘겼다.

불교계에서는 강남 봉은사 땅 12만 평을 3.3㎡당 6200원씩 받고 정부에 매각했다는 말이 전해진다. 정부 얘기보다 매각 규모도 크고 가격도 조금 더 비싸다. 불교계는 땅 매각을 둘러싸고 분규에 휩싸이기도 했다. 불교계는 당시의 땅 매각을 최악의 실수였다고 평가한다. 금싸라기 땅으로 바뀔 줄 모르고 헐값에 팔았다는 것이다. 봉은사 관계자는 “20만 평의 땅 중 지금 남은 것은 2만 평 정도”라고 말했다.

삼성동 일대는 원래 경기도 광주군 언주면의 일부였다. 조선시대에 승과고시를 치른 곳이어서 ‘승과평(僧科坪)’으로 불렸다. 일제 강점기인 1914년 3월 경기도 구역 획정에 따라 봉은사·무동도·닥점의 세 마을을 병합했다고 해서 삼성리로 불리기 시작했고, 63년 서울시에 편입됐다.

상공부의 단지건립 계획은 75년 정부가 종합청사를 경기도 과천에 짓기로 하면서 무산됐다. 상공부도 나중에 과천청사로 이전한다. 대신 한전 본사를 비롯해 코엑스빌딩·아셈타워·공항터미널 등 상공부 관련 기관들이 줄줄이 입주했다. 서울시 중구 남대문로에 사옥이 있었던 한전은 83년 6월에 땅을 매입해 86년 새 사옥을 지어 입주했다. 당시 토지 매입가는 23억원으로 3.3㎡당 9만원 선이었다. 봉은사가 판 가격이 3.3㎡당 5300원이든, 6200원이든 요즘 시세를 5000만~6000만원대로 보면 38년간 대략 1만 배 오른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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