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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임원 연봉 공개는 안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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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최근 정부가 기업임원의 연봉을 공개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어 기업의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언론에 보도된 내용을 보면 임원에 대한 보상체계가 주주이익에 부합하도록 등기이사의 보수를 사업보고서에 공개하게 하고 장기적으로는 사외이사로 구성된 보수위원회가 지배주주를 대신해 임원들의 경영목표와 성과를 평가하고 보수를 결정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임원 보수 공개의 취지가 아무리 순수할지라도 우리 현실에서는 실효성 없이 국민 간 위화감 조성, 노사 간 대립 등 부작용만 초래할 가능성이 커 도입하기에는 무리한 제도라는 것이 많은 기업인의 생각이다.

우선 주주이익을 위해 임원보수를 공개해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현행 제도에서도 등기이사의 보수 한도는 주주총회에서 승인을 받아야 하고, 보수합계와 평균보수를 사업보고서에 공개해야 한다. 능력이나 성과도 없는 임원들에게 과도한 보수가 지급되지 않게끔 시스템이 충분히 갖춰져 있는 셈이다. 따라서 개인별 보수를 추가로 공개하는 것은 주주나 국민의 궁금증을 풀어 줄 수는 있을지 몰라도, 주주이익은 이미 제도로 보장되고 있다. 또한 임원 개인의 보수가 알려질 경우 업무성과보다 여론에 따라 보수가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의 경우에도 GE의 잭 웰치 전 회장은 8000만달러가 넘는 연봉을 받았고, 애플컴퓨트의 스티브 잡스 회장도 7000만달러가 넘는다는 사실이 보도되면서 과도하다는 논란이 있었으나 이는 최고경영자(CEO)의 성과에 따라 정해진 것으로 주주들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우리는 막대한 이익을 내는 기업의 임원이라도 거액의 연봉을 받는 사실이 알려지면 주위의 따가운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동종업계의 다른 기업이 얼마를 받으면 영업실적에 관계없이 비슷한 임금을 받아야 하는 게 우리의 임금문화다. 하물며 같은 회사 내에서 임원과 직원 간, 경영진과 소액주주 간 임원 연봉을 둘러싼 소모적인 갈등은 불을 보듯 뻔하다. 공개된 보수 정보를 노동조합에서 임금인상과 경영성과의 배분을 요구하는 근거자료로 삼을 경우 노사갈등을 더욱 증폭시키게 될 것이다.

외부인사로 구성된 보수위원회에서 임원보수를 결정하는 것도 적절치 않다. 사기업의 경영에 이해관계가 없는 자가 경영에 간여하는 꼴이다. 기업이 원료를 누구로부터 얼마에 구입하고, 어떤 제품을 어떻게 생산할 것인가는 기업의 고유한 경영전략이듯이 임원에게 보수를 얼마를 주느냐 하는 것도 기업 스스로 정하는 것이 이치에 맞다. 특히 임원의 능력은 외부인사보다 기업 내부에서 더 잘 파악하고 있다. 보수위원회가 노조나 시민단체의 보이지 않는 압력을 완전히 무시할 수도 없을 것이다. 이들의 압력에 떠밀려 정당한 보상을 못할 경우 임원들은 일에 대한 열정을 잃게 되고 결국 주주이익에도 반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외국의 경우를 보면 임원보수 공개는 각 나라의 실정에 맞게 운영하고 있다. 미국은 개인별 임원보수를 공개하고 있으나 일본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보수총액만 공개하고 있고,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은 아예 임원보수를 공개하는 강제규정이 없다. 우리나라의 경우 대부분 기업이 철저한 성과주의에 따라 임원연봉을 책정하고 있다. 주주들이 승인한 총액한도 내에서 비공개.차등원칙을 적용한 연봉제를 통해 이들의 능력을 최대한 끌어내 주주이익을 극대화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 경제는 기업의욕 제고와 경제주체 간 화합이 절실한 시기다. 주주이익을 위한다는 명분에 집착해 경영진의 의욕을 꺾고 노사갈등을 부추기는 임원보수 공개 제도는 도입돼서는 안 된다.

김효성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