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인터뷰]데뷔8년만에 LPGA우승 재미프로골퍼 펄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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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재미동포 골퍼 펄 신 (한국명 신지영) 이 31세 늦깎이로 세계 정상에 우뚝 섰다.

지난달 31일 (이하 한국시간) 시카고 인근 스프링필드에서 열린 LPGA 스테이트 팜 레일 클래식 골프대회를 석권한 것이다.

흘러가는 세월 속에, 그리고 10년 아래인 '슈퍼 루키' 박세리의 눈부신 활약 속에 조금씩 잊혀져가던 그녀가 마침내 프로데뷔 8년만에, 무려 1백65개 대회만에 첫 우승의 감격을 누리며 정상이 돼 돌아온 것이다.

펄 신은 어린 나이에 스타가 된 선수들과는 달리 늦게나마 우승의 기쁨을 누린 데 대해, 그리고 자신이 걸어온 길에 대해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보이는 모습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지난 2일 캘리포니아 남부 헌팅턴 비치에 위치한 그녀의 집에서 2시간동안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 우선 우승을 축하한다. 매우 오랜기간 기다려온 우승이었는데, 우승이 확정된 순간 어떤 생각을 했나.

"처음엔 그냥 눈물이 흘렀다. 그리곤 세가지 생각을 했다.

첫째는 '마침내 기다리던 그 날이 왔구나' 하는 것이었다. 또 하나는 이제야 그동안 나를 보살펴주신 부모님께 결실을 안겨드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 (우승 당시의 감격이 새로워지는지 펄 신의 눈에는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 그리고 세번째는.

"오해 없기 바란다. 그동안 나를 포기했던 사람들에게 그들이 잘못 판단했음을 증명했다고 생각했다. "

- 아마추어 시절 너무나 화려했던 경력 때문에 그동안 마음 고생이 많았을텐데….

"조바심도 났고, 울기도 많이 울었다. "

- 뜻대로 되지 않은 이유는.

"내가 너무 몰랐고, 준비도 돼있지 않았다. "

- 어떤 준비가 부족했나.

"무엇보다 마음의 준비가 부족했다. 내가 대학을 다니던 80년대엔 미국여자프로골프 (LPGA) 의 인기가 지금처럼 높지 않았다. 난 대학시절 프로골퍼가 되겠다는 생각보다 공부를 해서 전공 (경영학) 을 살려 사회에 진출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대학에서 잘했으니까 그냥 프로로 뛰든 것이다. "

- 기술적으로 부족했던 점은.

"드라이버 비거리가 짧은 것이 큰 문제였다 (그녀의 평균 비거리는 2백26야드) .아마추어에선 내가 장타에 속했지만 프로에선 달랐다.

그나마 퍼팅과 쇼트게임이 좋아 버틸 수 있었지만 자신감을 잃으며 퍼팅 감각도 잃어버렸다. 그리고…. "

- 그리고.

"이제야 밝히는 일이지만 사실상 지난 3년 넘게 부상으로 고전했다. "

- 언제 어떻게 부상했나.

"이번 우승에 앞서 지금까지 내가 가장 좋은 성적 (준우승) 을 올린 94년 10월 허틀랜드 클래식이 끝난지 1주일 뒤였다.

피닉스에서 친구의 차를 타고 가다 교통사고를 당했다. "

- 큰 사고였나.

"아니다. 교통체증시간에 친구가 잠시 한눈을 팔다 앞차를 받았다.

겨우 시속 20㎞정도로 부딪쳤기 때문에 처음엔 몸이 조금 쑤셔도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원래 건강했고, 의사도 아무 이상이 없다며 1주일이면 다 나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1주일이 한달이 됐고, 한달이 3년이 돼버린 것이다. "

- 어떤 증상이 있었나.

"심할 땐 왼팔의 감각이 없어지는 등 끊임없이 나를 괴롭혔다. "

- 지금 상태는.

"그동안 물리치료를 받으며 체력단련 훈련을 강화했다.

그러다 보니 올초부터 낫기 시작해 이제는 거의 완쾌됐다. "

- 우승을 못해 좌절하지 않았나.

"처음엔 '언젠가는 우승할 것' 이란 생각에 그다지 서두르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자신감도 결국 벽에 부닥치며 은퇴를 생각하기도 했다. "

- 그러나 은퇴하지 않은 이유는.

"아버지의 설득이었다. 내가 갈 길은 내가 선택하는 것이지만 '좋은 모양새' 로 현역에서 은퇴하기를 바란다고 말씀하셨다.

어느날 갑자기 사라지지 말고, 설령 끝내 우승을 하지 못하더라도 최선을 다하다 멋지게 은퇴하라는 말씀이셨다. "

- 이젠 오히려 스윙이 향상됐다고 말했는데….

"박세리도 지도를 받고 있는 유명 티칭프로 데이비드 레드베터를 만났고, 또 아버지의 도움이 있었다. "

- 아버지의 도움이란.

"난 사실 아버지에게 처음 골프를 배웠다. 나를 가장 잘 아신다.

슬럼프에 빠진 뒤 여러 코치를 만났지만 아버지는 항상 새로 배운 기술에 대해 불만이셨다. 그러다 아버지가 '배울 바에는 레드베터 같은 사람에게 배우라' 고 하셨다. 막상 레드베터를 만나 배웠는데, 아버지도 레드베터에게 배운 기술에 대해선 만족하셨다. 또 내게 직접 지도하시지 않고 레드베터에게 배워온 것을 제대로 익히고 있는지 항상 점검해주시는 역할을 맡아주셨다. "

- 매우 긍정적인 성격인 것 같은데, 미신 같은 것은 없나.

"스포츠 선수들이 거의가 그렇듯 나도 미신이 많다. "

- 대표적인 예를 들자면.

"그린에서 공을 마크할 때 항상 똑같은 동전을 사용한다.

그동안 내가 태어난 해인 67년에 만든 동전을 사용하다 최근 83년 동전을 사용한 뒤 성적이 좋아 계속 사용하고 있다.

이 동전으로 40언더파 이상을 쳤다." (웃음)

- 그동안 많이 받은 질문일텐데, 후배인 박세리가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을 때 서운하지 않았나.

"그렇지 않다. 박세리 덕분에 요즘 한국기자뿐 아니라 LPGA를 찾는 기자들이 크게 늘어났다. 박세리로 인해 나도 많이 알려질 기회가 생긴 것이다.

박세리뿐 아니라 요즘 많은 한인 유망주들이 LPGA에 진출하고 있다.

모두가 잘 했으면 좋겠다. 그러면 우리 모두가 더 많은 인기를 누릴 수 있지 않겠는가. "

- 앞으로의 계획은.

"우선 올시즌 상금랭킹 30위권 이내에 진입해 시즌 피날레인 LPGA투어챔피언십 (상금랭킹 30위까지 출전권 부여.현재 36위)에 출전하는 것이다.

그밖에 많은 목표를 세우지는 않는다. 너무 많은 목표를 세우는 것은 자칫 나 자신 운신의 폭을 좁히게 된다. "

- 끝으로 결혼 계획은. (웃음)

"그렇지 않아도 요즘 부모님의 압력 (?) 이 강해졌다.

데뷔 초기엔 성공한 뒤로 미뤘는데, 나이가 들다 보니 자꾸 까다로워져 어려운 것 같다. 언제라도 좋은 사람 만나면 결혼할 생각이다. "

[펄신은…] 

▶출생지 = 서울 (67년생)

▶미국 이민 = 77년 3월 (미국시민권 소유)

▶아마추어 우승경력 = 88년 US아마추어, 88.89년 퍼블릭링크스외 주니어대회 포함해 80여대회 우승

▶키 = 1m61㎝^체중 = 48㎏

▶거주지 = 캘리포니아 남부 헌팅턴 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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