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주를 열며]국난극복 의병정신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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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국난은 대체적으로 통치집단이 국가안전보장 의무를 다하지 못한데서 초래하는 것으로 정치.경제.군사적 작용에 의해 발생하게 되는 것이 역사적인 현상이다.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환란 (換亂)에 의한 경제 국난도 그간 역대 정부가 방만한 국정운영은 물론 국제화시대에 상응하는 경제 식견과 안목의 수준이 미치지 못한 결과로 자초한 일이다.

책임정치 차원에서 간과할 수 없는 중대한 실정 (失政) 이라 하겠다.

1907년 국채보상운동을 보더라도 그렇다.

일본에 대한 구한국 정부의 부채가 과중해 도저히 국가재정으로는 상환할 능력이 없는 실정이었다.

정부는 정부대로 일본자본에 예속되고 민간은 민간대로 일본자본에 노예상태가 되면서 이 약점을 이용해 일본이 국권을 넘보기 시작하자 뜻있는 우국지사들이 국채보상 민간운동을 제기, 대대적 호응을 얻었다.

올 초에도 환란이 발발하자 언론이 선도해 국민 '금모으기' 운동을 전개할 때 대단한 열기로 관심을 보인 바와 같이 국난 극복의 국민적 의지는 이미 실증된 셈이다.

지금부터 88년전 (1910.융희4년) 8월 29일 우리나라 조선왕조는 국제정세의 격변에 기민한 대처를 하지 못하고 일본의 침략 전술에 휘말려 이른바 한일합병이란 경술국치를 당해 27대왕 5백19년의 역사로 종언하고 일본의 식민지가 됐다.

이에 울분의 가슴을 치면서 식음 (食飮) 을 전폐하고 순절하는 지사가 있었는가 하면 부모 처자를 뒤로 하고 국내외로 항일운동을 펴면서 풍찬노숙 (風찬露宿) 을 마다않고 오직 나라사랑 하나로 생명을 초개 (草芥) 같이 던진 의병정신은 나라 잃은 동포들에게 격동을 일으키는 데 충분했다.

1919년 3월 1일 기미년 만세운동으로 이어져 자주독립 의지를 만천하에 천명하는 계기가 돼 2차 대전 종전과 함께 광복을 되찾았다.

올해는 헌정수립 50주년을 맞는 해로 정부는 다시 건국하는 의지를 펴면서 국정쇄신과 새로운 한국인 상을 세우고자 한다.

우리 모두 나라 살리는 의병정신을 다듬을 때가 왔다. 이제 우리는 지난 일을 성찰하면서 새로운 사고 (思考) 로 진로를 모색하자. 권위주의 청산과 부정부패 심리.비리 유착 근성을 모두 버리고 몸과 마음을 목욕재계하는 자세로 새로 태어나야 하겠다.

정쟁도 지양하고 오직 통치력 향상에 몰두하며 기득권도 주장하지 말고 호양정신으로 국난 타개의 슬기만 발휘하자. 정해진 법을 먼저 지키고 호화낭비를 억제하며, 실업사태의 고통을 동포애 차원으로 수용하는 국민적 합의도 모색해야 한다.

산업현장의 근로자도 기업도 살리고 나도 함께 살며, 외국 자본의 길을 열어주는 협조도 나라사랑하는 정신일 것이다.

정부는 침체된 사회분위기를 고양 (高揚) 하기 위해 새 건국정신으로 충효 (忠孝) 사상을 계도하는 교육을 대대적으로 전개하기 바란다.

예의.염치.신의.성실 모두가 반만년 역사를 지켜온 민족의 정신적 뿌리다.

근본정신을 확고히 하고 그 정신으로 경제를 세우면 지금같이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지체하지 말고 추진하자. 언론은 무관의 제왕이라 했다.

현대정치의 삼권분립 체제에 또 하나의 권부로 보는 견해다.

언론은 국민의 편에서 다른 권부를 감찰하는 기능이 있다.

격려와 조장의 기능도 있다.

절대권력을 견제하고 절대권력의 속성인 부패를 방지하는 소금의 역할을 하자. 신상필벌 (信賞必罰) 의 객관체로서 정의사회 구현의 견인차로 그 막중한 소임을 수행하면 나라는 견실하게 유지.발전한다.

만약 언론이 특정한 세력이나 권부에 유착된다면 그 정도에 따라 국력이 정체된다는 사실은 지난 역사에서 실증된 바 있다.

그래서 언론은 곧 국가의 원기요 국민의 보루이며 권부에는 초법적 감찰기관이다.

또한 국가의 성쇠를 가름하는 에너지 원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종교는 절대자 (성인) 의 가르침을 순종하면서 수기안인 (修己安人) 하는 덕성을 함양, 실천함으로써 국민의 질을 높이는데 기여한다.

유교는 '측은심 (惻隱心)' , 불교는 '자비심 (慈悲心)' , 기독교는 '박애심 (博愛心)' , 모두 마음으로 닦아 이타 (利他) 하는 정신이다.

안으로 부모형제에게 지극히 하는 마음을 효제 (孝悌) 라 하고, 밖으로 겨레.국가에 지극히 하는 마음을 충신 (忠信) 이라 했다.

나라가 위태할 때 종교가 호국에 앞장서 충열 (忠烈) 정신을 발휘, 살신성인 (殺身成仁) 한 예는 많다.

국난을 맞아 언론과 함께 솔선하면서 국정쇄신에 철퇴가 되자는 것이다.

권오흥(인간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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