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심 스포츠 마케팅 ‘늦돼도 단 열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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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불황으로 인해 스포츠 시장에도 후원이 예전만 못하다. 일부 대회는 후원사를 찾지 못해 애를 먹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흔들리지 않고 스포츠 후원을 하는 금융사들이 있다. 교보생명과 현대카드·캐피탈이 대표적이다. 교보생명은 25년을 한결같이 이어온 뚝심이, 현대카드는 종목을 선별하는 선구안이 남다르다.

◆교보생명=유도 73㎏급의 세계 1위 왕기춘. 국제 대회에서 여러 번 우승한 그가 잊지 못하는 국내 대회가 있다. 초등학교 시절 나갔던 꿈나무 체육대회다. 그는 “초등학교 대회는 대부분 단체전인데 꿈나무 대회에는 개인전이 있었다”며 “그 대회를 통해 자신감도 얻었고, 유도 관계자들의 주목도 받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수영의 박태환 선수, 체조의 여홍철 선수, 빙상의 안현수 선수 등이 모두 이 대회를 거쳤다.

줄잡아 10만여 명의 유소년 선수가 거쳐간 이 대회는 교보생명이 후원한다. 1985년 1회부터 오는 25일 열리는 25회 대회까지 63억원을 지원했다. 별로 티도 안 나고, 당장 알아주는 사람도 별로 없다. 하지만 그게 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김팔모 대한체조협회 사무국장은 “초등학교 저학년이 참여할 수 있는 유일한 전국대회여서 선수 발굴에 요긴하다”고 말했다.

탁구연맹은 이 대회를 주니어국가대표 상비군 선발대회로 활용한다. 박치수 교보 상무는 “비인기 종목 저변 확대와 유망 선수 발굴은 교육보험을 처음 만든 우리 회사의 경영철학과 일치한다”며 “인기 스포츠 중심으로 지원하는 다른 금융사와 차별화하는 효과도 있다”고 말했다.

대회는 지역 사회에 한발 더 다가가는 역할도 한다. 지난해 대회는 충북 청주 일원에서 열렸고, 올해 대회는 경북 김천에서 열린다. 닷새 동안 열리는 대회의 참가 인원만 3000~4000명이다. 교보는 개최 도시의 경제적 효과를 7억원 정도로 추정한다.

◆현대카드=지난해 8월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베이징 올림픽 선수단 귀국 환영식. 결선에 오르지 못했던 리듬체조의 신수지 선수는 쟁쟁한 금메달리스트 사이에서도 많은 카메라 세례를 받았다. 그에 대한 관심은 올림픽을 계기로 부쩍 커졌다. 현대카드·캐피탈은 이런 신 선수를 일찌감치 눈여겨봤다. 올림픽이 열리기 전 현대캐피탈이 후원한 ‘세계 체조 갈라쇼’에 신 선수를 등장시킨 것. 이 회사는 9월 신 선수가 출연하는 두 번째 체조 갈라쇼를 연다. 신 선수만이 아니다. 이 회사는 2006년부터 김연아 선수가 출연하는 피겨스케이팅 수퍼매치도 열고 있다.

이 회사 스포츠 마케팅의 장점은 선구안이다. 비인기 종목을 지원하지만 스트라이크 존은 확 좁혔다. 당장 대중적 인기는 없지만 잠재적 팬이 상당하고, 그 팬들이 카드사의 우량 고객일 가능성이 큰 종목이 대상이다.

이런 잣대로 발굴한 종목이 테니스·피겨스케이팅·체조·사이클이다. 마리야 샤라포바나 로저 페더러를 초청해 TV로나 볼 법한 빅게임을 국내에서 연 것도 이 회사다. 신승호 국민대 체육학과 교수는 “현대카드는 비인기 종목이지만 올림픽 종목이어서 잘 선택하면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올 수 있는 경기에 집중한다”며 “종목과 선수 선점 효과도 크다”고 말했다. 현대카드 관계자는 “야구, 축구처럼 경쟁이 치열한 ‘레드오션’에 들어가지 않고서도 확실한 홍보 효과를 올릴 수 있었다”며 “차별화된 경험을 제공하는 회사라는 이미지도 심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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