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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전 중국어는 생존무기, 실력 확인해보고 싶었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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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어에도 말하기·쓰기 바람이 불고 있다. 문법과 단어를 외우는 것보다 외국인들을 만나 소통하고 일할 수 있는 능력이 중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주요 기업의 인사·교육 담당자들은 “시험 점수보다 자기를 표현하고 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 인재를 찾고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12일 치러진 비즈니스 중국어 시험(BCT)에는 학생뿐만 아니라 직장인들의 참여가 두드러졌다. 이날 시험을 치른 삼성전자 김상진(29·사진)씨를 만나 취업 전선과 새내기 직장인의 얘기를 들어봤다.

“영어 못하는 사람은 없잖아요. 남들이 못하는 중국어를 잘할 수 있다는 게 제 강점이었습니다.”

김상진씨는 2006년 12월 삼성그룹 공채로 입사했다. 그 어렵다는 대기업 입사에 성공한 비결 중 하나를 중국어라고 답했다.

“영어가 중요하지만 중국어와 일본어를 차별화 포인트라고 생각했습니다. 미국에서 살다 온 친구들보다 영어 회화를 잘하는 건 불가능하니까요.” 서강대 경제학과 재학시절 대학연합동아리 ‘한·일 학생회의’에서 활동한 그는 일본어도 잘한다.

입사 후 그는 컴퓨터사업을 담당하는 해외영업그룹으로 발령을 받았다. 중국어를 잘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중국인과 실무적인 대화를 해야 할 때면 콜(call)을 받기도 한다. “입사 때도 그랬지만 입사 이후에도 중국어는 저의 생존 무기입니다.”

그는 12일 중국어 실력을 가다듬기 위해 제2차 비즈니스 중국어 시험(BCT)에 응시했다. 지난 3월 삼성전자에서 사원들을 대상으로 한 BCT 시범 시험을 본 다음 정식 시험에 도전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계약서 작성이나 비즈니스 협상 등 현장에서의 중국어 실력을 측정할 수 있는 시험이었습니다. 듣기와 문법은 할 만했는데 말하기·쓰기 부분에서는 좋은 점수를 못 받은 것 같습니다.”

그는 요즘도 회사 안에 개설된 중국어 새벽반 강의를 듣는다. 토요일에는 아침 9시부터 낮 1시까지 사설 중국어 학원을 다닌다. 새로 들어오는 후배 중에 중국어 전공자도 많고 현지 연수를 다녀와 중국어를 잘하는 친구들이 많아져 꾸준히 실력을 길러야 한다고 생각한다. “BCT를 공부하게 되면 기업 현장 언어와 함께 금융·서비스 분야의 상식, 중국식 문서 작성법 등을 체득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가 중국어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군 복무 시절 만난 후임병의 권유 때문이었다. 베이징대학 법대를 졸업한 후임병에게 중국 이야기를 들으면서 호기심을 갖게 돼 혼자 책을 보며 문법과 단어를 독학했다.

“한자가 어려워서 중국어를 못하겠다는 사람들이 있지만 막상 해보면 별로 어렵지 않습니다. 한자 문화권인 한국사람에게 중국어는 오히려 영어보다 쉬워요.”

하지만 책으로만 배운 중국어는 실전 중국어와 달랐다. 문법과 단어를 안다고 해서 중국인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은 불가능했다. 2004년 1월 제대 후 복학한 그는 다음해 여름방학 때 중국으로 두 달간 단기 연수를 떠났다.

“제 중국어가 절름발이라는 걸 깨달았죠. 첫날 베이징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택시기사에게 사기를 당했을 정도니까요. 의사 표현을 제대로 할 수 없으니 어쩔 수 없었습니다.” 중국에선 중국어를 오랫동안 공부했다는 사람들도 발음이 나쁘거나 표현이 서툴러 기가 꺾이기 일쑤다.

대학 졸업반이 된 그는 취업 스터디를 시작했다. 자기소개서 쓰는 법을 공부하고, 모의 토론을 통해 까다로운 면접에 대비했다. 그해 가을 10여 개 기업에 입사지원서를 넣었다. 학점이 그리 좋지 않은 탓에 서류전형 탈락이란 고배도 마셨다. 삼성그룹의 경우 학점은 일정 수준만 넘으면 되기 때문에 큰 문제가 아니었다. 그보다 인성, 토론 능력, 프레젠테이션 능력, 영어 실력 등을 검증하는 면접이 더 중요했다.

그는 중국어 전문가들의 활동 영역이 앞으로 더 넓어지고 중요해질 것으로 믿고 있다. 삼성전자의 경우에도 중국 사업 부문이 계속 커지고 있다. 그의 꿈은 해외영업 마케팅의 전문가가 되는 것이다. 중국어 실력을 꾸준히 닦고, BCT 시험에도 몇 차례 더 응시할 계획이다. “호기심으로 시작한 중국어가 이제는 인생의 큰 자산으로 변한 셈입니다.”

글=박혜민 기자, 사진=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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