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군부“유혈충돌”경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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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러시아 군부의 동요가 심상찮다.

군 관측통들이 군부의 심상찮은 분위기를 전하고 있는 가운데 이고르 세르게예프 러시아 국방장관은 3일 "지난 93년 벌어졌던 의회와 대통령 지지세력간의 유혈충돌이 재발할 가능성이 있다" 고 경고했다.

군사문제 전문가들은 이를 "상황에 따라 군부가 나서겠다는 뜻을 정치권에 강력 경고한 것" 으로 해석했다.

문제는 이 발언이 누구를 겨냥했느냐는 점이다.

소식통들은 군 수뇌부의 최근 발언은 공산당 등 야당세력에 대한 옐친측의 경고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다.

93년 10월 옐친을 도와 최고회의를 진압한 사태가 재연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두마 (의회) 와 대통령의 대립구조로 돼 있는 현재상황은 당시의 재판 (再版) 이라 할 정도로 흡사하다.

현재 두마의 전신인 최고회의가 옐친에게 반발하며 그를 권좌에서 끌어내리려 했을 때 모스크바 주변의 '충성파' 군은 탱크를 앞세우고 밀고들어와 사태를 평정했었다.

만일 무력이 동원된다면 동원대상 병력은 모스크바 주위의 특수부대일 것으로 보인다.

전략 미사일군과 지상군.해군.방공군.공군 등 5군체제로 편성돼 있는 1백24만명의 정규군은 동원대상이 아니다.

러시아 언론은 최근 지난 93년 동원됐던 모스크바 인근의 타만스카야 사단과 칸테미로프스키 사단이 현재 1급 적색경보에 돌입했다고 보도했다.

두마 국방위원장 빅토르 일류힌 의원도 "크렘린 행정실의 군사문제를 담당하는 유리 야로프 부실장과 예브게니 사보스티야노프 부실장이 비밀리에 모스크바 외각에서 실시된 부대의 돌격훈련을 참관하고 시찰했다" 고 말했다.

이처럼 군동원 가능성이 커지자 야당들은 겁먹은 눈치다.

겐나디 주가노프 공산당수는 지난달 31일 "러시아가 내전의 위험에 직면하고 있다" 는 사전경고성 발언으로 견제에 나섰지만 통하는 것 같지 않다.

블라디미르 푸틴 연방보안부 (FSB) 장관이 즉각 "야당의 옐친사임 캠페인이 폭동으로 이어질 경우 FSB는 무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며 조건부 무력동원을 기정사실화했기 때문이다.

아직은 대야 (對野) 엄포용이란 관측이 우세하지만 사태진전에 따라서는 어떻게 발전할지 아무도 예측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모스크바 = 김석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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