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하다 덩치 커졌네 인터넷 공짜소설 시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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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순수문학의 인터넷 대이동이 본격화됐다. 15일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서 문을 연 ‘웅진 문학웹진 뿔’에서만 이제하·구효서·오현종씨 등 3명이 장편을 연재한다. 이들을 포함해 현재 인터넷에 장편을 연재중인 작가만 9명. 소설가 황석영씨와 문학평론가 도정일씨가 이끄는 문화웹진 ‘나비’도 21일 인터넷 서점 ‘예스24’에 둥지를 튼다.

인터넷 연재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선 출판사 문학동네의 네이버 카페. 김훈, 정도상 작가의 연재 소설 공지 화면을 캡처했다.


2007년 8월 네이버에서 순수문학 작가로는 처음 연재를 시작한 박범신씨의 ‘촐라체’ 이후 2년 만에 판도는 완전히 변했다. 인터넷에서 ‘공짜’로 읽을 수 있는 장편 소설이 10편을 넘어서는 시대가 온 것이다. 그 명암을 짚어본다.

◆‘보이지 않는 손’, 출판사=SF·추리 등의 장르물은 작가들의 자발적인 PC통신·인터넷 글쓰기에서 꽃피었다. 순수문학의 시스템은 완전히 다르다. 작가들은 연재 계약 시점에 출판사와 출간 계약을 맺는다. 베스트셀러 작가의 경우 포털사이트 등 인터넷 매체에서 연재료를 댄다. 그러나 그 외에는 출판사가 연재료까지 부담하는 게 일반적이다. 작가들로선 연재료에 고료까지 챙기니 손해 볼 것이 없다.

반면 출판사는 장편 원고를 확보하기 위해 출혈을 감수한다. 대표적인 출판사가 문학동네다. 지금까지 연재된 19편 중 8편이 문학동네와 출판 계약을 맺었다.

강태형 대표는 “평소 1만부를 넘기 힘들던 공선옥씨의 경우, 인터넷 연재 소설은 출간 2달 만에 1만8000부를 찍었다”고 설명했다. 독자들은 몇 달간 댓글을 달며 연재를 지켜보고, 따라읽던 추억이 담긴 책까지 구입한다는 것이다. 강 대표는 “독서란 원래 고독한 행위인데, 영화관에 앉아서 동시에 영화를 보듯 ‘광장에서의 독서’가 이뤄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창비의 김정혜 문학팀장은 “포털과의 제휴 마케팅, 입소문 마케팅 등의 통로도 확보하고, 독자 반응을 통해 판매 부수를 예측하는 등의 효과도 있다”고 말했다.

◆인터넷이 문학을 변화시킬까=‘알라딘’에 연재를 시작한 소설가 신경숙씨는 “따뜻한 댓글로 위로를 받지만, 투명한 유리창 안에서 누군가 지켜보는 가운데 글을 쓰는 듯한 강한 긴장감도 느낀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연재 공간이 바뀌었다고 해서 글 쓰는 방식이 바뀌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문학동네 네이버 카페’에 연재 중인 김훈씨는 “작가와 독자의 관계는 격절되는 것이 좋다”며 “작업실에는 컴퓨터도 없고 독자들의 댓글에 답변할 생각도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인터넷이 문학에 주는 영향이 없으리라 장담하기엔 이르다. 민음사 장은수 대표는 “투자한 만큼 벌어들여야 하는 상업적 공간이 주는 한계가 크다”고 지적했다. 출판사가 최소한의 연재 고료와 인세를 부담한다 해도 적자를 면하려면 최소 2만부는 팔아야 한다. 문제는 그 정도 역량을 갖춘 작가가 많지 않고, 그만한 재정을 부담할 수 있는 출판사도 많지 않다는 것이다.

인터넷 문학판에서 기존의 종이 문예지와 같은 담론·시·단편·평론은 드문 대신 장편·에세이가 주를 이루는 것도 출간 후 팔릴만한 것에 쏠리는 경향을 보여주는 셈이다.

초창기 순수문학 작가들이 독점하던 문학코너가 대중들이 선호하는 장르문학 작가들에게 일부 넘어가기도 했다. ‘미디어 다음’은 공지영·이기호씨의 연재가 끝난 뒤 김이환·이수영·하지은씨 등의 SF·미스터리물 쪽으로 바통을 넘겼다. 웹진 ‘뿔’ 역시 조만간 장르문학으로 범위를 확장할 계획이다. 네티즌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것도 특징이다. 웹진 ‘나비’는 네티즌 서평을 끌어안고, ‘알라딘’은 ‘창작 블로그’를 개설해 네티즌의 창작욕을 자극한다.

‘ 뿔’의 기획 자문위원을 맡은 문학평론가 이경호씨는 “문학이 문화의 중심일 땐 독자들이 어렵고 딱딱한 글도 감당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받아들였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며 “온라인 웹진의 방향에 따라 한국 문단의 성격도 달라질 수 있으리라 본다”고 말했다.

문학평론가 이광호씨는 “인터넷으로의 매체 이동은 필연적”이라 전제하고 “장르·작가·스타일의 다양성이 보장되는 길을 찾아야 장기적으로 한국 문학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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