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당신 커버스토리] 암환자 심리치료 어디쯤 왔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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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 발병 일반인의 5.6배

2002년 유방암 수술을 받은 이명옥(54·左)씨가 국립암센터에서 불면증 인지행동치료를 받다 웃음을 터뜨리고 있다. 이씨는 이 치료를 받으면서 그동안 복용해 왔던 수면유도제를 줄여나가고 있다.


정신종양학은 이름 그대로 암환자를 정신적으로 도와주는 학문. 정신과 전문의뿐 아니라 심리학·간호학·사회사업 전문가들이 참여해 암 치료 과정에서 겪는 환자의 정서적 고통을 상담하고 치료한다.

최근 국립암센터는 지난 1년여간 국내 암환자 375명의 디스트레스(정서적 고통) 유병률을 조사해 발표했다. 자료에 따르면 암환자의 우울증 발병률은 41%였다. 이는 일반인(5.6%)의 5.6배 수준. 특히 ‘죽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의 자살 성향을 보인 사람’은 20.6%, 자살 시도 또는 계획한 사람도 5%나 됐다. 일반인보다 6.8배 높은 수치다.

국립암센터 정신건강클리닉 김종흔 박사는 “암 진단 후 환자들은 절망감과 고립무원에 빠져 정신적으로 취약해진다”며 “자포자기한 상태에서 치료를 거부하거나 이혼으로 가족이 해체되고, 자살까지 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암환자가 우울증에 쉽게 빠지는 것은 절망적 상황 때문. 하지만 암 자체가 우울증을 촉발하기도 한다. 김 박사는 “염증성 물질인 사이토카인이 우울증을 유발한다는 이론이 있고, 여기에다 암 치료제가 우울증을 야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우울증이 암 치료 효과를 떨어뜨리는 것은 물론 환자를 극도로 나약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서울대병원 신경정신과 함봉진 교수는 “우울증 환자는 통증 조절이 안 되고, 부작용이 더 심하게 나타나며, 신경이 예민해진다”며 “사소한 것에도 서운해하고, 화를 잘 내는 등 주변 사람과 마찰을 빚어 스스로 고립을 자초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자기 조절 능력 상실이나 죄책감·무력감·신체 손상에 대한 두려움 등도 암환자라면 통과의례처럼 겪는 정서적 변화들이다.

긴 투병에 소외감 느끼기 쉬워

더욱 심각한 것은 정서적 지지를 필요로 하는 암환자가 급격히 늘어난다는 점이다. 암 치료술이 좋아지면서 암환자의 투병 기간이 길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국립암센터 임상심리 전문가 유은승씨는 “암 발병 초기에는 가족 모두 당황하고 치료에 몰두하느라 정신이 없지만 오히려 안정기에 들어서면서 우울증이 심각하게 대두된다”고 말했다. 실제 조사 결과에서도 자살 건수와 시도가 암 진단 2년 이내보다 이후에 2.8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우울증 환자에 대한 정신과의 개입은 삶의 행로를 바꿔놓는다. 유방암 2기로 불면증 때문에 정신과를 찾은 박모(47)씨. 어머니를 유방암으로 떠나보낸 그녀는 밤마다 어머니의 환영이 자신을 짓누른다고 했다. 의사는 정신분석을 통해 그녀가 완벽을 추구하는 성격임을 밝혀냈다. 치열하게 살아온 자신에게 암이 찾아온 사실을 용납할 수 없었던 것. 그녀는 병원에서 인지행동 치료를 받고 우울·불안증에서 벗어난 것은 물론 느긋하게 사는 인생관을 터득했다. 현실을 부정하는 태도와 집착을 버리니 잠도 잘 왔고, 가족과의 관계도 원만해졌다.

암환자의 삶의 질에 가장 먼저 관심을 가진 나라는 미국이다. 메모리얼 슬론 케터링 암센터는 1950년대 초 센터 내에 정신과를 설립했고, 현재 정신종양학팀엔 정신과 의사·임상심리사 20여 명이 암 종류별로 나뉘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삶의 질 높이도록 정신과 치료도 필요

우리나라는 암센터가 많지만 암환자를 위해 정신과 의사가 배치된 곳은 국립암센터와 원자력병원(각 1명)이 전부다. 나머지 병원은 암센터에서 환자를 보내주면 진료를 하는 수준이다.

함 교수는 “암에 걸리면 가족 전체의 삶에 위기가 온다”며 “지금까진 생명을 연장하는 양적 진료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 앞으로는 암환자의 삶의 질을 높이는 투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런 인식 하에 84년 설립된 국제정신종양학회는 27개국 학회와 연계돼 세계보건기구(WHO)의 비정부기구(NGO)로 활동하며, 심리사회적 지원 서비스 지침을 개발하고 있다.

김 박사는 “우울증 조기 발견을 위한 선별 검사 도구 개발, 의료진에 대한 교육, 상황별 대처 프로그램 개발을 통해 암환자의 스트레스를 적극적으로 해결해주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글=고종관 기자, 사진=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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