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학교 탐방 ⑨끝]'자연을 닮은 아이들의 자유학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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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후 수업시간은 전교생 통합으로 지난주에 다녀온 6박7일간의 강원도 동굴 여행을 정리하는 시간을 마련했다.

일산에서도 30여분은 족히 북으로 가야 한다. 하나하나가 '작품'인 건물들이 드믄드믄 서 있는 너른 벌판. 2002년 3월에 개교한 초등 1~5학년 과정의 대안학교 '자연을 닮은 아이들의 자유학교'(자자학교, http://www.jajaschool.net, 031-941-7295)는 경기도 파주시 헤이리 예술촌에 있다. 9월에 문을 열 '동화나라' 어린이 서점 건물 지하와 2층에 세들어 있다.

지하로 내려가자 엉덩이가 온통 흙투성이인 아이들이 왁자하다. 도무지 정리가 안 된 듯한 분위기다. 두리번거리고 있으니 한 아이가 손을 잡아끈다. "팬더 찾으시죠? 저 방에 있어요."

여기서는 교사들을 별명으로 부른다. 심지어 "팬더, 나 이거 줘"하고 반말을 쓰는 아이도 있다.

'팬더' 조경미(30.여) 선생은 "어린이들은 존대말을 몰라서 자기 의사를 잘 표현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아이의 존대말에는 존대말로 답하고, 반말에는 같이 반말을 씁니다. 중요한 건 상대방을 얼마나 존중하느냐지 존대말을 쓰느냐가 아니죠"라고 설명했다.

제멋대로 뛰고 떠들던 아이들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점심시간이다. 아이들이 조용히 한 줄로 서서 급식담당 '짜로' 선생과 '고모' 선생이 담아 건네는 접시를 받는다. 잡곡밥과 콩나물국에 돼지고기 편육.새우젓.마늘종.마늘장아찌.배추김치다. 상에 너댓명씩 둘러앉아 말없이 밥숟갈을 떠 넣는다.

▶ 자자학교는 점심시간에 항상 묵언(默言) 수행을 한다.

"묵언수행중입니다. 먹는 것에 대한 예의를 잃지 않도록 식사중에는 말을 하지 않기로 했어요. 저희는 먹는 걸 중시합니다. 유기농 재료를 쓰고, 인공감미료를 최대한 자제한 소박한 식단을 꾸립니다." 조 선생이 설명했다.

오전에는 수학 등 주제수업. 12시 좀 넘어 점심시간 시작, 두 시부터 네 시까지가 오후 수업이다. 오후 수업은 미술.음악.과학 등의 선택 수업으로 진행된다. 점심식사 후 긴 자유시간. 둘러앉아 공기놀이를 하기도, 구석에서 혼자 종이접기를 하기도 한다.

너무 '풀어 키우는' 건 아닐까? 2학년 예민이 엄마 김효숙(36)씨의 생각은 달랐다. "일단 공부는 접고 들어왔습니다. 전에 살던 아파트 입구에 붙은 광고지가 결정적 계기였어요. '영.수 과외합니다'라는 거였는데, 카이스트 석사과정까지 나오고 미국서 유학갔다왔다고 써 있더군요. 그렇게 힘들게 공부해서 얼마나 헤매며 돌아온 길이 저걸까 싶었어요. 자기가 원하는 걸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아이라면 뭐든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중.고등.대학교 안 나와도 좋습니다."

당사자인 예민(8.여)이는 어떨까? 영어유치원을 다녔고 사교육이란 사교육은 다 경험해본 예민이다.

"그땐 딱딱 시간맞춰 지내야 했어요. 쉬지도 못하고, 조금 놀다보면 다음 학원 갈 시간이고. 지금은 수업이 다 재밌어요. 선택수업 중에선 비행기 접기랑 민속놀이가 재밌어요."

▶ 자자학교 8조법. “제1조: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해야 하는 일도 할 거다” 등이 눈에 띈다.

급식 담당 '짜로' 진창희(37.여) 선생은 원래 자자학교 학부형이었다. 지금도 아들 은교가 4학년에 다니고 있다. "학부형으로 학교를 자주 드나들며 보니 식생활이 중요한데도 인력이 모자라더군요. 이를 고민, 계획, 집행할만한 살림꾼이 필요하겠다 싶어 자원했어요"

일단 대안학교에서 자유로운 교육을 받아본 아이들은 대개 일반학교로 진학하지 않는다. 자자학교의 경우 졸업생들은 간디학교나 실상사학교 등의 중등 대안학교로 진학했다. 대부분의 학부형들은 자녀에게 사교육,선행학습을 시켜가면서도 '좋은 대학, 좋은 직장'에 못 갈까봐 걱정인데 자자학교 학부형들은 아무렇지도 않을까? 진선생은 전혀 아니란다.

"오로지 공부에 승부를 거는 건 잘못됐다고 봅니다. 저도 열심히 공부했고 모범생으로 살았습니다. 대학도 당연히 가야 하는 줄 알았고. 무엇이 행복인지, 진정 제가 뭘 좋아하는지는 잊고 살다보니 언제부턴가는 과연 내가 잘 살아왔나 싶더군요. 우리 애는 그걸 스스로 알게끔 하고 싶어요. 뭐가 되든 자기에게 남은 인생을 풀어가도록. 뭘 하든 그 일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도록."

▶ 오후 수업 후 미숫가루 간식을 먹는 2학년 예민이. 일반 초등학교서 급식을 먹으면 자주 장염에 걸렸었지만 자자학교에서 주는 음식은 뭐든 맛있다고 한다.

자자학교의 목적은 아이들을 이 사회에 적응시키는 게 아니다. "이렇게 건강하게 자란 아이들이 이 사회를 변화시킬 겁니다" 조경미 선생은 자신있게 말한다.

아쉬운 점은 뭘까.

일단 여느 대안학교와 마찬가지로 학비 부담. 자자학교에 아이를 보내려면 입학금 300만원, 새 학교 건축을 위한 예치금 200만원, 매달 35만원의 교육비를 내야 한다. 예치금은 졸업할 때 돌려받을 수 있다. 그래도 정부 지원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재정 사정은 좋지 않은 편이다.

또한 현재 전교생 40명 중 20% 가량의 아이들이 과잉 행동장애, 고기능 발달 장애 등 특수아다. 특수학교에 가기엔 '너무 멀쩡'하고. 일반 초등학교에선 '왕따감'이다. "이런 아이들을 받아줄 학교가 없습니다. 원래 정원의 10% 이내로만 받으려고 했는데." 조 선생의 걱정이다. 또 대안학교라는 곳이 문제아들이 가는 곳, 아니면 또다른 고급 사립 학교라는 세간의 선입관도 힘들다고 했다.

자자학교에는 설립자도 교장도 없다.

"유치원에서는 자유롭고 마음결도 곱던 애가 초등학교에서는 파리하고 항상 긴장해 있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런 공교육의 문제를 개탄만 할 게 아니라 학부형들이 '우리가 해 보자'며 나서서 교사를 뽑고 학교의 재정적 운영 등을 합의했습니다." 조선생이 설명했다. 대안 교육에 대한 수요는 많은 편이다.이번 봄에는 14명 모집에 30명이 오기도 했다.

▶ 자자학교 수업시간표

어떤 아이로 키우고 싶은 걸까?

"자자학교는 교육에 있어서 자유, 그 자유에 따르는 책임, 신념과 자신감을 중시합니다."

진창희 선생의 말이 여운을 남겼다.

"다들 학교가 무너진다, 공교육이 문제가 많다고들 합니다. 그런 관심은 대개 사교육을 많이 시키는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점점 교육을 망치는 길로 가면서 교육 걱정을 하는 건 어폐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경쟁에서 살아남고 이기는 걸 가르치는 속에서 인성 교육이 가능할까요? 인간으로서 행복해지고자 하는 의지와 욕구가 일단 키워져야 합니다."

파주=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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