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그와트, 마법학교에서 연애학교로 변신하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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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호 04면

이제 볼멘소리가 터져나올 때도 됐다. 왜 아니겠는가. 소설의 한 문장 한 문장을 충실히 옮긴 듯한 스크린 버전에 번번이 환호해온 게 벌써 여섯 번째이니. 영국 작가 조앤 롤링의 세계적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한 ‘해리포터’ 시리즈 6탄 ‘해리포터와 혼혈왕자’(이하 ‘혼혈왕자’) 말이다. 그래서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불사조 기사단’에 이어 두 번째로 메가폰을 잡은 데이비드 예이츠 감독은 전편들과는 전혀 다른 돌파구로 향했다.

영화 ‘해리포터와 혼혈왕자’

호그와트 마법학교를 수놓는 사춘기 소년소녀들의 핑크빛 로맨스로, 시리즈에 전혀 다른 색채를 부여하는 것이다. 하긴 이제는 다소 징그러울(!) 정도로 부쩍 자라버린 대니얼 래드클리프(해리), 에마 왓슨(헤르미온느), 루퍼트 그린트(론) 삼총사의 낯선 모습이 관객들 눈에 영 설게 느껴지지 않으려면 별 뾰족한 수가 없는 건 사실이다.

연애담에 무게 중심을 둔 건 절반의 성공, 절반의 실패다. 론에게 무서운 열정으로 대시하는 라벤더 브라운, 이를 질투하는 헤르미온느, 전편의 초 챙에서 이제는 론의 여동생 지니에게 연애감정을 느끼는 해리 등 소년소녀 마법사들이 빚어내는 우스꽝스럽고도 알콩달콩한 ‘청춘 스케치’는 여러 대목에서 유쾌한 웃음을 준다.

하지만 감독은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놓쳤다. 원작 팬들은 호그와트가 ‘마법학교’이지 ‘연애학교’이길 바라지 않는다는 걸. ‘죽음을 먹는 자들’이 런던의 하늘을 휘젓고 다니며 도시의 상징 밀레니엄 브리지를 파괴하는 도입부는 2년을 기다려온 팬들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데 충분했다. 하지만 이어진 청춘물로의 급전환은 2시간30분이 넘는 기나긴 러닝타임을 버티게 하는 데는 확실히 역부족이다.

사실 원작대로라면 덤블도어 교수와 해리가 ‘펜시브(기억을 담아놓고 들여다보게 한 물건)’를 이용해 마왕 볼드모트의 어린 시절인 톰 리들의 비밀스러운 과거를 파헤치는 게 핵심이다. 두 사람은 파괴적인 어둠의 기운을 나눠놓은 물건인 7개의 호크룩스가 어디 있는지를 알아내야 한다. 해리가 우연히 발견한 ‘혼혈왕자’의 마법서가 누구 것인지도 밝혀져야 한다. 이런 주요한 이야기의 가닥들이 충분히 뻗어나가지 못했다. 원작에 대한 무조건적인 충성심만으로 권하기엔 ‘혼혈왕자’는 너무 다른 방향으로 가버렸다.

이런 불만에도 불구하고 출발은 좋다. 개봉 첫날(15일)만 전국 관객 26만여 명을 기록했다. 이는 시리즈를 통틀어 최고 성적이다(역대 최고는 2편 ‘비밀의 방’). 시리즈 통틀어 2000만 명을 이 ‘이종 해리포터’로 돌파할 수 있을까. 7탄이자 마지막인 ‘죽음의 성물’은 두 편으로 나뉘어 각각 2010년과 2011년에 개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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