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란잎 우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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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호 11면

올해 장마가 간단치 않습니다. 장마전선이 남북으로 오르내리면서 고루 비를 뿌립니다. 도시에 살 때는 꿉꿉한 장마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산중에 사는 지금은 절실할 때가 있습니다. 메마른 봄을 보낸 올여름, 비다운 비에 속이 후련해집니다. 더 심해지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장맛비에 갇혀 있다가 잠시 그친 틈을 타 동네를 내려갔습니다. 큰비가 남기고 간 구름이 건넛마을 산등성이를 에워쌉니다. 흩어지는 비구름이 변화무쌍합니다.

PHOTOESSAY 이창수의 지리산에 사는 즐거움

노전마을, 배씨 아저씨가 애써 가꾼 토란 밭이며 콩밭이 물을 잔뜩 먹어 싱싱하게 파릇해졌습니다. 역시 일한 사람은 그 대가를 꼭 받습니다. 특히 땅을 일구는 농사꾼들에게는 그 결과가 명확합니다. 밭작물이 주인의 발소리를 듣고 큰다는 것은 농사는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배씨 아저씨 밭이 그렇습니다. 토란이 쑥쑥 자라는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여름에 소나기 내리면 시골 아이들이 널찍한 토란 잎을 꺾어 우산 대신 쓰고 뛰어가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이제는 동네에 아이들이 귀해 쉬이 볼 수 없는 아쉬운 풍경입니다.


이창수씨는 16년간 ‘샘이깊은물’ ‘월간중앙’등에서 사진기자로 일했다. 2000년부터 경남 하동군 악양골에서 녹차와 매실과 감 농사를 짓고 있다.사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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