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사표 확 집어던지고, 마침내 배낭을 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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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아름다운 시절- 프로방스에서 보낸 100일
김태수 지음, 황소자리
312쪽, 1만3000원

직장 생활 20년 만에 사표를 던졌다? 이건 요즘 코푸는 소리도 못된다. 사표라도 쓰고 떠날 수 있다면 행복한 인생이다.

오로지 “프로방스에 가기 위해” 40대 가장이 멀쩡한 직업을 버렸다? 요것은 얘기가 된다. 10년 넘게 한 남자의 심장을 꿰찬 현실의 유토피아는 프랑스의 ‘남도 지방’쯤 되는 프로방스다. 놀러 다니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이 땅에서 “내 생애 가장 청명한 순간”을 보내겠다고 결의한 이 사내는 자그마치 4년여에 걸쳐 마음의 배낭을 쌌다.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 듯 이처럼 자문자답하며. “헤이! 이봐, 끝끝내 이렇게 살다 갈 거야? 쫀쫀하게 사는 인생 억울하지도 않아?”

『아름다운 시절-프로방스에서 보낸 100일』은 “삶이 나를 배반했다는 걸 내가 깨닫기 전에… 먼저 축 처진 현실의 엉덩이를 걷어찬” 김태수(46)씨가 프로방스와 온 몸을 비비며 나눈 사랑의 기록이다. 단 5분도 목적 없는 발걸음을 떼보지 않았던 그가 ‘골목길 어슬렁대기’에 빠져든다.

“골목 사이로 비쳐드는 햇볕을 받으면서 남의 집 문간에 가만히 앉아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 봤다. 한없이 자유로웠다. 이런 느낌이 그리워 길을 떠나왔는지도 모른다.” 한나절에 카페 세 곳을 전전하며 ‘뭉개기’ 프로젝트, 일명 ‘멍 때리기’ 작업을 실시한다. 순간순간 외로웠지만, “홀로 멍청해져 뇌를 쉬게 한 일이야말로” 그가 누린 가장 사치스런 호사였다.

지은이가 직접 찍은 사진 250여장이 이곳저곳에서 프로방스의 햇빛을 쏟아내며 ‘감히 떠나지 못하는’ 독자를 들쑤신다. 여생을 견딜 ‘추억의 힘’을 듬뿍 충전한 그는 말한다. “좀 슬렁슬렁 사는 것도 좋겠다.”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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