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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겨읽기 BOOK] 세계의 문화가 부딪치는 곳 뉴욕은 ‘상상력 발전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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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세계의 크리에이티브 공장 뉴욕
엘리자베스커리드지음
최지아 옮김
샘앤파커스
376쪽, 1만2000원

경찰의 눈을 피해 지하철 외관에 현란한 그림과 사인을 그려넣던 뒷골목 반항아 바스키아. 무명의 그래피티 아티스트였지만 후에 그는 앤디 워홀과 공동작업을 할 정도로 스타로 부상했다. 사람들은 말한다. 그것은 ‘뉴욕’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그렇다면 뉴욕은 어떻게 창의적인 예술가들이 집결한 도시가 된 것일까, 또 뉴욕의 문화예술산업을 움직이는 동력은 어떻게 생산되는 것일까.

이 책은 남가주대(USC)에서 도시계획학을 가르치고 있는 저자가 이 질문을 던져놓고 뉴욕 심장부의 예술가들을 만나며 직접 발로 뛰어 쓴 보고서다. 제목에 들어간 ‘공장(팩토리)’이란 단어는 의미심장하다. 1960년대 워홀의 작업실이 ‘팩토리’였다. 다양한 크리에이티브 분야의 요새인 동시에 괴짜 예술가들의 놀이터였던 ‘팩토리’는 70년대와 80년대 뉴욕 예술·문화의 모태가 되었다. ‘팩토리’가 곧 뉴욕의 그 ‘특별한 것’이었던 셈이다.

무명의 그래피티 아티스트가 스타로 부상할 수 있는 곳이 뉴욕이다. 뒷골목 낙서로 시작해 세계적 명성을 얻은 바스키아의 작품.

저자는 “뉴욕에서는 서로의 영역을 넘나드는 온갖 부류의 사람들과 마주칠 수 있다”는 점, 즉 지리적 밀집성에 주목한다. 아티스트·뮤지션·패션 디자이너와 클럽·미술관·록 콘서트장이 모두 25평방 마일(서울시 서초구와 동작구를 합친 크기)남짓 되는 공간에 모여 있다. 산업적인 측면으로만 봐도 강력한 집중화와 다양성을 갖춘 이곳은 컬쳐 이코노미가 성장할 수 밖에 없는 구조란다.

뉴욕에서는 ‘보그’의 편집장 안나 윈투어 같은 사람의 역할도 한 몫 한다. 아티스트들이 생산한 문화 상품의 가치를 평가하고 창출해내는 것이 ‘미디어’이기 때문이다. 크리에이터들은 같은 술집에서 어울리고 같은 갤러리, 같은 레스토랑으로 몰려다니며 파티를 벌이며 인맥과 친분을 쌓는다. 겉으로 보면 시간을 허비하는 것 같고 사치와 허영으로 가득 차 보이지만 그곳에서 비즈니스를 하고 커리어의 발돋움이 이뤄진다. 오죽하면 흑인음악의 대부 퀸시 존스가 음악이 소셜 네트워크(인맥)에서 출발한다며 “우리가 하는 것은 음악이 아니라 사회학”이라고 말했을까. 나이트클럽도 그곳에선 “새로운 패션과 음악을 위한 연구실”이고 “예측할 수 없는 기회를 제공하는 공간”이란다.

저자는 뉴욕의 핵심을 ‘만남’과 ‘충돌’이란 키워드로 요약했다. 그녀는 말한다. 정보는 어디에나 널려있지만 다양한 사람들이 직접 만나고 충돌하는 곳에야 말로 진정한 기회가 있는 것이라고.

책은 뉴욕의 문화사부터 트렌드 까지 면밀한 분석을 담았다. 학자의 시선으로 뉴욕을 파헤치면서도 뉴욕의 역동적 에너지에 매료된 저자의 설렌 숨결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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