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 인터뷰]축구대표팀 새사령탑 허정무 감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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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허정무 (43) 감독. 그는 86년 멕시코월드컵때 선수로 뛰었다.

이탈리아와의 경기에서 종료 직전 넣은 멋진 골은 아직도 국민들의 뇌리에 선명히 남아 있다.

90년 이탈리아월드컵때는 트레이너로 이회택 감독을 도왔다. 94년 미국월드컵에서는 코치로 참가했다. 김호 감독을 보좌, 2무1패라는 좋은 성적을 거뒀다.

98년 프랑스월드컵때는 직접 간여하지는 못했지만 현장에서 TV해설가로 활동했다.

새 축구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은 그는 한국이 4연속 진출한 월드컵대회와는 이처럼 유난히 인연이 깊다.

새 대표팀감독의 계약기간은 일단 2년이지만 그의 머리에는 벌써 2002년 월드컵으로 꽉 차있다.

서슴없이 "16강, 나아가 8강이 목표" 라고 말하는 그는 "나의 자세는 목표를 갖고 도전하는 것" 이라고 당당히 말한다.

그는 현재 전남드래곤즈 감독도 겸하고 있다. 프로축구 전북 다이노스팀과의 한판을 위해 전북 군산에 온 그를 지난 25일 군산공설운동장에서 만났다.

- 요즘 프로축구 관중들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습니다.

"팬들에게 고마울 뿐이죠. 신세대 스타들의 등장, 프랑스월드컵 실패후 약간의 동정심과 2002년월드컵 개최국으로서의 위기감 같은 게 작용했다고 봅니다. 선수들은 좋은 경기로, 심판들은 엄격한 룰 적용으로 보답해야죠. "

- 월드컵과 유난히 인연이 깊은데 월드컵대회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한마디로 세계인의 대축제죠. 지구촌 전체가 한덩어리가 돼 미쳐버립니다.

국가간 전쟁이라고도 할수 있죠. 축구인으로서는 가슴 뿌듯한 축제입니다."

- 2002년 월드컵 목표는 가능합니까.

"솔직히 한국이 월드컵에 4회연속 진출한 것은 기적입니다. 프로팀도 연습구장이 없는 열악한 환경속에서 그만한 성적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한국이 근본적으로 축구를 사랑하고 자질이 뛰어나고 정신적.체질적으로 강하기 때문입니다.

프랑스월드컵때도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분명히 찬스는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제 자세는 목표를 갖고 도전하는 것입니다. 체력은 문제가 없습니다.

확실한 전략을 세우고 가진 기량만이라도 1백% 발휘한다면 1승과 16강은 물론 개최국의 이점을 살려 8강도 가능하다고 봅니다. "

- 대표팀 운영은 어떤 방식으로 할 계획입니까.

"일단 방콕아시안게임과 2000년 시드니올림픽을 대비해야죠. 이 두 대회는 21세 이하팀으로 일원화할 겁니다. 아무래도 대학선수들이 중심이 돼야 할텐데 프로선수들은 문제가 없지만 대학선수들은 훈련기간을 충분히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표팀 운영의 기본방향은 프로를 희생시키지 않는 것입니다. 경기가 없는 주중에 소집하거나 한달에 한주는 경기를 하지 않는다면 그때 소집해서 훈련이나 게임을 하는 게 좋습니다.

장기합숙훈련은 하지 않을 겁니다. 합숙을 많이 하다 보면 생각이 좁아지고 통제가 뒤따르게 됩니다.

또 선수들이 자기 생각을 감독에게 터놓고 얘기할 수 있도록 분위기 조성을 할 겁니다."

-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우리 축구가 무엇이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축구 내적으로는 초.중.고.대학 경기가 현재 단일대회 형식이 아니라 지역 리그제로 바뀌어 많은 경기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프로구단에서 중간 클럽제 형식으로 지역 유.소년들을 관리, 오후시간에 잔디구장에서 체계적으로 지도해야 합니다.어렸을 때부터 잔디에서 체계적인 기술축구를 배우지 않으면 발전은 없습니다.

정치하는 분들의 월드컵에 대한 이해가 너무 부족합니다. 프랑스의 우승으로 프랑스가 하나가 됐듯이 월드컵은 국민의 사기문제입니다.

지금은 스포츠가 전쟁이나 다름없습니다. 조금 더 이해해주고 전문가들과 상의해 신중하게 결정했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엘리트 체육이 부작용은 있지만 국민 사기와 국가의 위상을 드높인 역할을 해온 것은 사실입니다."

- 스포츠맨십과 페어플레이를 강조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승부를 위해 이것들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스포츠맨십은 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땀흘리고 연구하는 것입니다.

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고나서도 개운할 때가 있고 이기고도 화날 때가 있습니다.

이것이 스포츠맨십이라고 생각합니다. 승부를 위해 이것을 포기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95년 포항 감독시절 천안일화와의 챔피언결정전에서 졌을 때 억울하고 할말 많았지만 참았습니다. 제가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 축구계는 학연.지연 등으로 파벌도 많고 내분도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솔직히 학맥이 있습니다. 없어져야 합니다. 축구계 부조리와 내분도 있지만 많이 좋아지고 있습니다.

시간이 해결해준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연세대를 나왔지만 고려대 출신 친구들이 많습니다.

또 전라도 출신이면서 경상도 친구가 많습니다. 제 앞에서는 학교.지방 따지는 사람들이 거의 없습니다. 학연과 지연은 철저히 배제하려고 노력합니다."

- 선수와 지도자는 무엇이 다릅니까.

"선수때는 나만 잘하면 됩니다. 팀은 지더라도 나만 잘했으면 자위할 수 있었지만 지도자는 전체를 봐야 합니다. 또 선수들이 인정하고 따라올 만한 실력을 갖추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선수들이 우습게 보기 시작하면 금방 권태를 느낍니다."

- 프랑스월드컵때 언론과 지도자간의 마찰이 있었습니다.

"언론은 기본적으로 승패에 따라 보도합니다. 어떤 때는 과다한 칭찬도 있고 억울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목소리 높여봐야 돌아오는 게 없습니다.

언론보도에 대해서는 초연하기로 했습니다. 다만 내가 과정을 충실히 했는가에 대한 반성은 있어야겠죠. "

- '진돗개' 란 별명을 좋아합니까.

"좋아합니다. 그 별명은 함흥철 선생님이 지어주셨는데 잘하면 진돗개, 못하면 ×개라고 불렀죠. 진돗개는 충성심이 강하고 용맹스럽습니다."

- 네덜란드에서의 선수생활이 축구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됐습니까.

"네덜란드 PSV아인트호벤에서의 생활은 제가 축구에 눈을 뜨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됐습니다. 이전에는 안된다고 지레 포기했던 것도 시도했고, 시도하니까 되더라고요. 첫딸의 이름을 '화란' 이라고 지을 정도로 좋아합니다.

네덜란드의 영웅 요한 크루이프가 활약하던 아약스와의 원정경기에서 크루이프를 밀착마크, 꼼짝못하게 만드는 바람에 더 유명해졌습니다.

프랑스월드컵때 마르세유에서 네덜란드 응원단이 욕을 하기에 제가 네덜란드 말로 같이 욕을 해줬지요. 그랬더니 눈을 동그랗게 뜨고 '융무 후?' (허정무의 네덜란드식 발음) 라며 저를 알아보더라고요. 벌써 15년이 지났는데요."

만난 사람=손장환 체육부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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