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남성들을 향한 외침

중앙일보

입력

관련사진

photo

뉴스위크제목에 중요한 두 글자가 빠졌다. ‘가끔’. 책은 “묘하게 슬프고 에로틱한 여인” 대신 택한 “팔뚝 굵고 튼튼한 아내”를 사랑하는 필자의 속마음을 숨기지 못한다. 얄팍한 상술의 제목이라며 외면할 생각이라면 말리고 싶다.

재미학 강사 김정운 교수의 새 책‘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왜냐고? 재미있으니까. ‘남성성의 문화심리학’이라는 부제는 딱딱하지만 보다 확실한 설명 같다. 심리학을 전공한 김정운 명지대 여가경영학과 교수가 저자다.

“강연요청을 거절하는 비서를 따로 둬야 할 정도”라고 너스레를 떨 만큼 담백하고 솔직한 저자의 미덕이 책 곳곳에 드러난다. “왜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도무지 행복해지지 않는가”라는 한국남성들의 절박한 질문에 답하려고 썼단다.

그런 남자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덩달아 불행한 한국여성들이 읽어봐도 전혀 손해는 없다. 한국남성은 한마디로 “의사소통 장애환자”라고 김 교수는 말했다. 대표적인 예가 ‘폭탄주’다. 왜 폭탄주를 마시느냐고 물으면 십중팔구 남자들은 “빨리 취하려고 마신다”고 답한단다.

그럼 왜 빨리 취하고 싶으냐고 물으면 “맨정신으로 이야기하기가 힘들다”고 한다. “이렇게 서로 마주 보며 이야기하기를 두려워하는 증세를 정신병리학에서는 ‘자폐증’이라고 부른다”고 김 교수는 말한다.

따라서 폭탄주는 “집단 자폐증상”인 셈이다. 김혜수로 대표되는 큰 가슴 집착증, 거의 자학에 가까운 마라톤 열기, 안마시술소와 퇴폐이발소를 양산하는 ‘피부자극결핍증후군’ 등은 상호작용과 의사소통이 부족한 한국남성들의 문화심리적 퇴행이 낳은 결과물이다.

그가 내놓는 처방은 간단하다. 재미를 찾으라! 삶의 소소한 재미를 모르는 남자들 때문에 본인들은 물론이고 처자식과 사회 모두 불행하다. 김 교수가 말하는 삶의 즐거움은 대단한 곳에 있지 않다. 20년 넘게 한 이불을 덮어 둔감해진 부부는 호텔에서만 보았던 까슬까슬하게 다려진 하얀색 침대시트로 바꾸기만 해도 신혼여행 당시로 돌아간다. 이는 집안의 실권을 쥔 부인에게 해 주는 서비스가 아니라 남성 자신이 스스로의 즐거움을 능동적으로 찾아가는 한 가지 방법이다. 물론 김 교수 자신의 경험담이다.

즐거움을 찾는다며 대나무 만년필에 매료되고 슈베르트 안경을 고집하는 그만의 노력이 일견 새롭지도 않고 식상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내놓는 한국문화, 특히 한국 남성문화를 겨냥한 노골적이고 오지랖 넓은 해석과 처방을 읽어가다 보면, 정신 나간 사람처럼 혼자 웃음을 터뜨리는 경험을 여러 번 하게 된다.

한국남성들은 자신의 존재를 확인 받고 싶어 몸부림친다. 모든 존재가 그러하겠지만 특히 그들은 폭탄주 같은 극단적인 방식으로 그 욕구를 표출하는데, 사실상은 존재 확인의 욕구를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잘 모른다고 해야 옳다. 또한 자신들의 즐거움을 능동적으로 해석할 줄도 모른다. 필자는 한국남성들이 골프에 ‘미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골프는 운동이 아니라 이야기다. 한국남자들이 술도 마시지 않은 상태에서 네 시간 이상 이야기할 만한 주제는 골프밖에 없다. 여자 이야기도 이렇게 길게 하지는 못한다.”

재미를 찾고 그 재미를 능동적으로 해석하다 보면 재미를 통한 자기계발이 가능해진다. ‘이야기’의 재미가 바로 골프의 묘미라는 사실을 인식한 남성이라면 다른 남성들보다 자신의 이야기를 보다 적극적으로 할 줄 알 테고, 또 그러다 보면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도 더 귀를 기울이게 될지 모른다.

김 교수는 시쳇말로 ‘자뻑’에 가깝다. 자신이 쓴 글에 스스로 감동하기가 한두 번이 아니란다. “신이시여, 정말 내가 이 글을 썼단 말인가요?”했다니 말 다했다. 한마디로 주책스러울 만큼 솔직하다. 하지만 그가 진짜 하고 싶은 속말은 따로 있다. “자신이 즐겁고 재미있게 쓴 글은 읽는 사람도 그러했고 반대의 경우는 독자 또한 아주 불행했다.”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는 솔직한 한 남자, 그리고 그 주변 남자친구들의 즐거운 수다에 가깝다. 그리고 김 교수 자신이 삶의 재미를 찾아나간 긴 여정이자 재미 그 자체다.

마지막으로 필자의 에필로그도 놓치기 아깝다. 독일 유학에서 돌아와 한국사회에 꼭 필요한 여가경영과 재미학을 강의하는데 가끔 사람들이 자신을 “실력 없이 말재주만 갖고 버티는 허접한 교수 취급한다”며 불평을 늘어놓는다. 독일에서 박사 따기가 어디 그렇게 쉬운 줄 아느냐며 핏대까지 세운다. 이 또한 전혀 꾸밈이 없다.

“여전히 많은 사람이 ‘재미없는 삶’에 대한 내 문제제기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아니,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것이다. 자기 내면의 깊숙한 문제를 끄집어내 마주 대하는 것처럼 힘든 일은 없기 때문이다.” 인생의 재미를 찾고 싶다면 먼저 솔직해져야 한다.■

이정명 뉴스위크 한국판 기자

매거진 기사 더 많이 보기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