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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문화유산 답사기]제2부 3.옥류동 비봉폭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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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천둥번개가 친 것도 아닌데 빗방울 듣는 소리에 잠이 깨곤 했으니 금강산에서 첫날 밤 나는 퍽이나 긴장했던 모양이다.

그렇게 선 잠을 자고도 해보다 먼저 일어나 동틀 때를 기다리는데 비는 그쳤지만 아직도 수정봉이 흰 구름에 갇혀 보이지 않는 것이 여간 마음쓰이는 게 아니었다.

미역국에 곤쟁이젓갈로 아침밥을 맛있게 먹고는 답사장비를 갖추어 현관으로 나오니 길라잡이로 나온 엄영실 (24) 안내원이 반갑게 인사한다.

나는 인사보다도 급한 마음으로 오늘 안개가 걷힐 것 같으냐고 물었다.

그러자 엄안내원은 산쪽을 유심히 바라보면서 가벼운 혼자말로 대답을 대신했다.

"구름이 바다쪽으로 밀려가고 있구나…. 인차 걷히기는 걷힐 것 같은데…. " 우리의 금강산 첫 답사는 옥류동으로 잡혔다.

신계사 (神溪寺) 터에서 옥류동 비봉폭을 거쳐 구룡폭 상팔담으로 이어지는 이 코스는 내금강 만폭동과 쌍벽을 이루는 금강산 탐승의 백미다.

우리는 예고편 없이 곧바로 금강산의 하이라이트로 들어가는 셈이었다.

안내원의 권유대로 우리는 신계사터는 하산길 몫으로 돌리고 곧장 옥류동 주차장까지 한숨에 달려갔다.

차에서 내려 안내원이 인도하는 대로 계곡 위쪽으로 난 산길로 접어드니 가벼운 바람이 스치며 일으키는 연한 산내음에서 벌써 금강산 정기가 다가오는 전율이 느껴진다.

금강산에 첫발을 내딛는 일행의 모습을 둘러보니 저마다 사진기 하나씩은 똑똑히 걸어매고 묵묵히 걷고 있었다.

그럴 때 일어나는 침묵이란 명작에 대한 예의같은 것이었다.

루브르박물관의 다 빈치 그림 '모나리자' 앞에서,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가 그려져 있는 시스티나 성당 안에서 관객들은 모두 숨조이며 발걸음조차 기척없이 움직인다.

그러나 안내원의 해설이 시작되면서 그런 침묵과 명상의 탐승은 무너졌다.

당차고 영리한 안내원은 열과 성을 다해 달달달 외운 해설을 유성기 녹음처럼 술술술 풀어냈다.

"금강산은 돌이 만가지로 재주 부리고 물이 천가지로 재롱부리며 만든 자연의 조화입니다.

같은 금강산이라도 안팎이 달라서, 내금강은 은은하고 얌전하고 밋밋하고 우아하고 수려하여 안 내 (內) 자를 쓰고 외금강은 웅장하고 기발하고 기세차고 당당하고 씩씩하여 바깥 외 (外) 자를 씁니다. " 안내원의 설명은 배울 것도 많고 어법도 아주 재미있었다.

그러나 나는 침묵의 금강산을 더 만끽하기 위해 뒤로 처져 멀찍이서 따라갔다.

일행들이 멀리 사라졌을 때 천지에 들리는 것이라고는 아무렇게나 냇돌을 짓찧으며 내달리는 계곡의 물소리 뿐이었지만 그것조차 내 귀엔 금강산의 실내악이라도 되는 양 예사롭게 들리지 않았다.

내가 다시 앞서간 일행을 만난 것은 앙지대 (仰止臺) 너럭바위에서였다.

누구든 이 자리에 머물면 (止) 우러러 보게 (仰) 된다고 해서 앙지대란다.

실제로 앙지대는 사방이 큰 봉우리로 둘러싸여 하늘이 좁게 보인다.

호화롭고 장대하게 생긴 세존봉 (世尊峯) 채하봉 (彩霞峯) 이 엄습할 듯 다가오는데 그 사이로 그에 못지않게 잘 생긴 절벽바위는 아직도 이름이 없단다.

금강산엔 그런 억울한 산과 바위가 하나 둘이 아니었다.

앙지대에서 다시 이름도 아름다운 금수 (錦繡) 다리를 건너, 온정리 개구리가 눈이 빠지게 금강산 구경하다 굳어 버렸다는 개구리바위도 보고 또 산삼과 녹용이 들어있는 샘물이라는 삼록수 (蔘鹿水) 로 목도 축이면서 마냥 여유를 부리며 걸었다.

그리고는 이내 집더미만한 큰 바위가 겹겹이 쌓여 길을 가로막는 옥룡관 (玉龍關) 금강문 (金剛門)에 마주하게 되었다.

여기를 지나야 옥류동과 구룡폭이 나온다고 해서 옥룡관이고, 여기를 넘어서야 비로소 금강산의 진짜 맛을 보게 된다고 금강문이란다.

금강문은 과연 금강문이었다.

돌문 하나를 뚫고 들어왔을 뿐인데 계곡이 장대하게 열리는 것에 감탄사를 아낄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육당 최남선도 금강문을 나서는 순간 '에쿠' 소리를 질렀다고 했다.

금강문을 나오면서 바로 만나는 그 유명한 옥류동 (玉流洞) 은 계류와 반석 (盤石) 과 소 (沼)가 어우러지는 계곡미의 절정이었다.

너럭바위를 타고 내리는 물은 청옥 (靑玉) 빛으로 푸르고 5m 깊이 물속이 바닥까지 보이는 그 투명함은 유리보다도 더한데, 제각기 나뒹구는 천석들은 야성미를 자랑하며 넓은 무대바위는 족히 한판의 춤판을 벌일 만하다.

사위를 둘러보니 앞으로는 거룩한 세존봉과 연꽃같은 천화대 (天華臺) 요, 뒤로는 백옥같은 옥녀봉 (玉女峯) 이다.

안내원이 말하기를 옥류동은 하도 많은 아름다움이 뒤섞여 있어서 화가는 구도잡기 힘들고 시인은 말고르기 어렵기로 이름높단다.

그럴 만도 하였다.

그런데 유독 소정 (小亭) 변관식 (卞寬植) 만은 천하의 명작 '외금강 옥류동' (1963년 작) 을 남길 수 있었을까? 생각컨대 소정은 바로 옥류동처럼 스스럼없이 기세찬 필치로 그렸기 때문일 것이다.

예술의 세계는 항시 이런 달인 (達人) 이 있어 감히 자연미에 도전을 걸어보게 되는 것이다.

옥류동은 우리의 발길을 오래도록 놓아주지 않았다.

우리는 결코 떠날 의사가 없었는데 계곡 아래쪽에서 안개가 올라오기 시작했다는 안내원의 협박성 재촉에 마지 못해 산길을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금강산은 점입가경이었다.

산길에서 스쳐 지나며 내려다 본 연주담 (連珠潭) 은 선녀가 남기고 간 구슬이라는 전설에 값하고 남음이 있다.

그리고 세존봉 층층바위를 타고 내리는 비봉폭포는 장쾌하기 그지없었다.

그 길이가 무려 1백39m이다.

나는 이렇게 유려한 폭포를 본 일도, 상상한 일도 없었다.

비단필을 풀어놓은들 이처럼 유연할까. 산들바람에 흔들리는 모닥불인들 저처럼 긴 꼬리를 내흔들까. 비봉폭포는 이름 그대로 나는 봉황의 모습이다.

바위 아랫도리에 물이 층층이 꺾이어 돌개바람에 일어나는 물안개의 파장은 여지없이 깃털 모양을 그려낸다.

밤새 내린 비로 폭포는 더욱 세차고 꼬리는 더욱 신비롭다.

나는 이 아름다운 광경을 행여 놓칠세라 사진을 찍고 또 찍었다.

때마침 부슬비가 내리며 안개가 은은히 덮이는 것이 더욱 신비로웠다.

나는 작품이라도 만들어볼 욕망에 가방 속에서 망원렌즈를 꺼내 갈아끼웠다.

그리고 사격수처럼 정조준하여 조리개를 당기는데 아뿔싸! 그 사이에 비봉폭포는 안개 속에 자취를 감추었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말로만 듣던 금강산의 풍운조화였다.

그제서야 나는 안내원 말을 잘 들었어야 했다고 후회했다.

그때 안내원은 저 앞에서 안개가 밀고 오르기 전에 빨리 구룡폭으로 오라고 소리친다.

나는 있는 힘을 다해 뛰기 시작했다.

글 = 유홍준 (영남대 교수.박물관장)

사진 = 김형수 (통일문화연구소 차장)

※다음회는 '구룡폭포'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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