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취재]IMF직장인 '죽음의 스트레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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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더이상 일하지 말래. 우리 둘 다 잘렸어…. " 인천 세광전선 잡역부 마정남 (58.인천시부개동) 씨는 지난 5월 1일 오전 9시쯤 해고통보를 받은 직후 가슴을 움켜쥔 채 쓰러졌다.

같은 회사 구내식당에서 일하다 함께 일자리를 잃은 부인 황옥분 (60) 씨와 큰아들 명성 (21) 씨에 의해 인천길병원으로 옮겨진 마씨는 '심장판막 질환 및 고혈압에 의한 심부전' 이라는 중병진단을 받았다.

병원비를 감당못해 13일만에 중환자실에서 퇴원한 마씨는 26일 그간 기거하던 회사식당 옆방에서 결국 세상을 떠났다.

지난해 12월 16일 부도가 난 경기도 안산의 자동차 부품업체인 S강업에서 일하던 강인식 (50.경기도시흥시정왕동) 씨는 지난 1월 12일 동료들과 저녁을 먹다 갑자기 쓰러져 5시간만에 세상을 떠났다.

위장파열.복막염.심장마비가 겹친 것. 동료들은 "부도후 실직우려 등 과도한 스트레스로 심신이 쇠약해진 것이 사망의 원인" 이라고 주장한다.

IMF체제는 이처럼 실직고민과 직장불안으로 인한 스트레스사 (死) 를 양산하고 있다.

근로현장의 충격과 스트레스가 극심해지면서 뇌.심장혈관 질환으로 사망하는 경우가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올 상반기 뇌졸중.심장마비 등 정신적 스트레스와 관련있는 질병 사망건수는 지난해 같은기간의 2백89건보다 16%나 늘어난 3백36건에 이르렀다.

이는 지난해 과로사 사망건수가 6백60명으로 96년의 6백1명보다 9.8% 증가한 것과 비교해 증가속도가 훨씬 빨라진 것이다.

산재추방단체 연대회의 조옥화 대표는 "기업체들이 산재보험요율 인상을 우려해 유족의 보상신청을 막거나 사고를 은폐하는 경우까지 따지면 실제 발생은 훨씬 많을 것" 이라고 추정했다.

다행히 목숨은 건졌으나 중풍 등 중병으로 '경제활동 사망선고' 를 받는 경우도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젊고 건장한 사람도 예외가 아니다.

D건설 인천 현장사무소에서 2년6개월간 숙식하며 건설일용직으로 일해온 박형도 (29) 씨는 중풍으로 노동력을 잃었다.

신종 IMF형 스트레스사나 이에 의한 중병은 산재보상보험법에 따른 보상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노동과 건강연구소 공동대표인 김진국 변호사는 "노동부.근로복지공단의 과로사 보상 판정기준이 사고 3일~1주일 전의 근무시간 변화에 초점을 맞출 뿐 업무밀도와 형태변화, 긴장과 압박감 등 노동환경변화에 따라 등장한 새로운 요인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고 지적했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백도명 교수 (산업의학) 는 "우리 보상기준과 예방대책이 장시간 근무만 따지는 70년대 일본방식을 따라왔는데, 이제는 근로현장의 심리적 부담이 더욱 무섭다는 새로운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한국식 기준과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고 강조했다.

중앙일보 기획취재팀 = 손병수.홍승일.채인택 기자, 사진 = 박종근 기자

제보 02 - 751 - 5222~7

도움말.자료 주신분 = ^백도명 교수 (서울대 보건대학원.산업의학) ^서홍관 교수 (인제의대 서울 백병원.가정의학) ^조정진 과장 (한일병원 가정의학과 주임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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