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금의환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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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1천5백년이라는 엄청난 시간차가 있기는 하지만 고대 중국의 시인 도연명 (陶淵明) 과 독일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고향' 을 받아들이는 생각과 자세에서 근본적인 차이를 보인다.

오랫동안 관직에 몸담고 있다가 사회현실의 여러 가지 모순에 회의를 느껴 분연히 사표를 내던지고 낙향한 것이 41세 때. " (고향에 돌아와서야) 지금이 옳고 지난 날은 글렀었음을 깨달았네" 라 읊은 '귀거래혜사 (歸去來兮辭)' 가 도연명의 첫 작품이다.

가계 (家系) 의혈통은 독일이지만 체코슬로바키아의 프라하에서 태어나 오스트리아의 국적을 가진 릴케는 일찍부터 고향을 부정했다.

전 유럽을 방랑하는 일로 한평생을 보낸 그는 '하이마트로제 (失鄕)' 라는 말을 즐겨 쓰면서 "나에게는 고향이 없다" 는 말을 입버릇처럼 되뇌었다.

현대인은 모두 '정신적인 망명자' 이기 때문에 설혹 고향이라 부를 수 있는 곳을 찾아간다 해도 결국 고향이 없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뿐이라고 쓰기도 했다.

도연명과 릴케의 고향에 대한 그같은 생각의 차이는 꼭 1천5백년이라는 시간적 차이나 동서양이라는 공간적 차이에서 비롯된 것만은 아니다.

어찌보면 그것은 고향에 대한 인간심리의 보편적 양면성을 대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어떤 소설가가 쓴 것처럼 '진정으로 사랑했던 고향에로의 통로는 기억으로만 존재할 뿐 이 세상의 지도 (地圖) 로는 돌아갈 수 없는' 것이 바로 사랑하지만 현실로는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는 고향의 두 모습이다.

'큰뜻' 을 품고 고향을 떠나는 젊은이들에게 가족과 고향사람들은 한결같이 입을 모은다.

"부디 성공해서 돌아오라" 고. 부귀영화 (富貴榮華) 를 성취하라는 뜻이다.

한데 가족과 고향사람들의 기원대로 성공하는 사람이 나오는 경우 사람들은 '고향사람의 성공' 이라는 점보다 '성공한 사람의 고향' 이라는 점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려 한다.

단순한 애향심의 차원이 아니다.

나라를 떠나면 나라 전체가 고향이 된다.

세계 규모의 스포츠에서 우리나라 선수가 좋은 성적을 거뒀을 때 전국민이 환호하는 것도 그렇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라면 국가를 대표하게 되니 어떤 지역 출신이냐는 별 의미가 없다.

취임후 처음 고향을 찾은 대통령에게 남다른 감회가 없을 리야 없겠지만 '떠들썩한 금의환향' 은 어떨는지 생각해 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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