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미숙아]인큐베이터 태부족 부모들은 자포자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미숙아들이 거리로 내몰리고 있다.

미숙아들의 생명유지에 필수적인 인큐베이터 시설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미숙아를 낳은 부모들은 대부분 서너 군데 이상 병원을 찾아 헤매야 겨우 병상을 구할 수 있다.

한 달 전 산부인과 의원에서 1.8㎏인 미숙아를 낳은 산모 K모씨 (32) 는 "서울시내 종합병원을 8군데나 문의해 겨우 미숙아치료용 인큐베이터가 있는 S병원으로 옮길 수 있었다" 고 말했다.

빈 곳이 없을 땐 병상이 날 때까지 무작정 기다려야 한다.

그나마 애써 구한 인큐베이터 병상에 모니터나 인공환기장치 같은 필수장비가 없어 무용지물인 경우도 드물지 않은 실정이다.

이처럼 인큐베이터가 부족한 이유는 미숙아 치료를 위한 의료보험료가 지나치게 낮은 탓. 한국보건사회연구원 黃나미 책임연구원은 최근 인큐베이터 1대당 하루 1만2천6백60원의 원가가 소요되는데 병원이 보험공단과 환자로부터 받는 돈은 6천3백20원에 불과하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결과적으로 환자를 받는 만큼 손해인 셈이다.

전문가들이 추정한 국내 적정 인큐베이터 병상 수는 7백 병상. 그러나 黃연구원의 조사결과 인큐베이터 병상은 모두 5백65개였다.

이중 모니터.인공환기장치.수액주입기 등 제대로 장비를 갖춘 인큐베이터는 1백96병상에 불과하다.

이처럼 부실운영되는 인큐베이터가 많은 데 대해 黃연구원은 "종합병원이 수련의를 둘 수 있는 3차진료기관으로 지정받기 위해서는 인큐베이터 시설이 있어야 해 대부분 형식적으로 한 두 대를 갖추고 있기 때문" 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전국 유명종합병원 가운데 인큐베이터 시설을 제대로 가동하고 있는 곳은 5군데에 불과하다.

열악한 시설 못지 않게 미숙아들을 어렵게 만드는 것은 '미숙아는 살려도 사람구실을 제대로 하지 못할 것' 으로 여기는 일부 부모들의 그릇된 인식.

그러나 서울대병원 소아과 김병일 (金柄一) 교수는 "1천g 이하의 극소저체중 미숙아라도 일단 살려놓기만 하면 80%는 부모의 우려와 달리 장애 없이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 고 강조했다.

'미숙아〓장애아' 란 오해 때문에 치료 한번 제대로 못 받고 죽어가는 미숙아들은 의외로 많다.

경희대병원 소아과 배종우 (裵鍾雨) 교수팀이 지난해 전국 64개 종합병원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인큐베이터 집중치료가 필요한 1천5백g이하 미숙아의 20%가 부모에 의해 퇴원한 것으로 추정됐다.

현재 의학기술은 6백g대의 미숙아까지 살려내고 있으므로 의학적으로 충분히 살릴 수 있는 미숙아들이 생명을 잃고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보험료를 현실화하고 지역별로 미숙아 집중치료 병원을 지정하는 한편 경제적인 이유로 부모가 양육을 포기한 미숙아에 대해선 미국처럼 국가에서 치료비를 부담해야한다" 고 입을 모았다.

불합리한 의료보험 부과체계도 문제다.

대표적 사례는 8백g 이상의 미숙아에게만 보험혜택을 줌으로써 부모들의 미숙아 포기를 부추키고 있는 것. 미숙아 치료의 핵심인 인공 폐표면 활성제의 경우 8백g 이상일 경우 의료보험이 적용되므로 1백여만원 가량의 치료비중 부모는 20만원 정도만 내면 된다.

하지만 현대의학기술로 살릴 수 있는 6백~8백g 미만의 미숙아에겐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치료비 전액을 부모가 부담해야한다.

미숙아의 상태를 점검하기 위한 모니터 장치나 약물이나 영양을 공급하기 위한 수액주입기도 하루 한차례만 인정된다.

하루 두차례 이상 가동하게 되면 보험혜택을 받을 수 없다는 것. 그러나 제대로 된 미숙아 치료를 위해선 하루 서너차례 이상 모니터를 사용하거나 수액주입기를 갈아줘야한다는 것이 의료진의 설명이다.

미숙아란 임신기간이 37주 미만이거나 출생시 체중이 2천 5백g 이하인 영아를 말한다.

97년 경희대병원 소아과 배종우 (裵鍾雨) 교수팀의 조사에 따르면 매년 67만여 명의 신생아가 출생하는데 이중 11%인 7만 3천여 명이 미숙아라는 것. 이중 특별한 치료와 관리가 필요한 32주 이하 미숙아는 1만 9천여 명, 1천 5백g 이하 미숙아는 1만 1천여 명에 이른다.

서울대병원 소아과 김병일 (金柄一) 교수는 "아직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미숙아 출산이 점점 늘고 있다는 것이 학계의 추정" 이라고 설명했다.

과거 미숙아 출산율은 4~8%였지만 현재 각종 조사에서 10%를 웃돌고 있다는 것이다.

미숙아가 왜 발생하는 지에 대해선 아직 명확치 않다.

갈수록 심해지는 환경공해의 영향으로 태아의 자궁내 환경이 나빠져 예정일보다 빨리 출산한다는 환경설과 부모에게 원래 미숙아를 낳을 소지가 큰 유전자가 있다는 유전설이 가장 유력하다.

미숙아의 생명을 위협하는 가장 큰 요인은 정상 신생아와 달리 폐가 제대로 자라지 못해 호흡을 할 수 없다는 것. 미숙아는 정상적으로 폐 속에서 분비돼야 할 표면활성제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표면활성제란 폐가 풍선처럼 늘었다 줄었다 하는 것을 반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종의 윤활유. 이 때문에 1천g 이하나 30주 미만의 미숙아 중 80%가 인공환기장치가 달린 인큐베이터가 없으면 생존할 수 없다.

그러나 의학의 발달로 폐가 정상적으로 성숙할 때까지 2개월간 인공환기장치가 달린 인큐베이터에서 인공 표면활성제를 투여하게 되면 대부분 치료된다.

뇌성마비 등 후유증을 남기는 경우는 전체 미숙아 10명 중 1명에 불과하다.

살려 낼 수 없는 미숙아의 한계도 점점 좁혀지고 있다.

현재 전국 유명종합병원 신생아 중환자실 팀은 6백g을 조금 넘는 미숙아도 거뜬히 살려내는 수준. 金교수는 "최근에는 신생아의 몸무게가 5백g만 넘어도 포기하지 않고 치료를 시도하고 있다" 고 들려준다.

5백g 이하 미숙아는 전체 미숙아의 1%도 되지 않아 거의 모든 미숙아는 치료가 가능한 셈이다.

홍혜걸 기자.의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