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북작가 박태원의 삶은…] 전신마비, 앞 안보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1면

장편소설 '천변풍경', 중편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의 작가 박태원(1909~1986.사진)의 월북 이후 삶을 증언해주는 글이 '문학사상' 8월호에 실렸다.

박태원의 의붓딸이자 북한의 여성 문필가인 정태은씨가 쓴 '나의 아버지 박태원'으로, 본래는 북한의 계간 문예지 '통일문학' 44호(2000년 3월).45호(2000년 6월)에 실렸던 글이다.

글은 정씨의 어머니 권영희씨가 1956년 재혼을 해 박태원이 그의 새 아버지로 등장하는 대목에서 시작한다.

박태원과 '림꺽정'의 저자 홍명희의 만남, 지독한 음악 애호가였던 그가 감자로 세끼를 떼우는 형편에 월급을 쪼개 빅타 축음기를 샀던 일 등 전후 경제난 속의 북한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사례들도 소개된다.

그러나 글의 대부분은 두차례에 걸친 뇌출혈과 전신 마비, 백내장 등으로 인한 70년 완전 실명 등에도 불구하고 박태원이 대표작인 장편소설 '갑오농민전쟁'을 써 낸 과정을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글에 따르면 박태원은 전신 마비에 언어 장애까지 겹친 악조건 속에서 부인 권씨에게 구술을 해 '갑오농민전쟁' 3부작 중 1부(77년).2부(80년)를 완성했다. 구술조차 불가능해지자 손가락으로 글자를 그려 3부의 구상과 형상 의도를 권씨에게 설명해 글을 쓰도록 했다. 3부는 권영희가 쓴 셈이다.

박태원의 작가정신은 김일성 눈에 들어 79년 국기훈장 제1급 수여로 나타났다. 정씨는 박태원이 '위대한 장군님의 전사'라는 칭호도 받았다고 밝혔다.

하버드대 엔칭 도서관에서 '통일문학'을 발견한 권영민 서울대 국문과 교수는 "'갑오농민전쟁'이 박태원.권영희 공저라는 사실은 알려져 있었지만 자세한 사정이 밝혀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밝혔다. '갑오농민전쟁'은 국내에서는 89년 깊은샘 출판사가 8권으로 출간했다.

신준봉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