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에 짝짝 붙는 춤, 볼레로에 미친 남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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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볼레로에 미친 사나이.

과격한 표현일까. 그래도 과장은 아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현대 무용 안무가 안성수(47·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교수·사진)씨는 라벨의 ‘볼레로’에 단단히 꽂혀 있다. 지금껏 볼레로 음악으로 만든 춤만 8편이나 된다. 여기에 하나가 더해진다. 17일부터 사흘간 공연되는 ‘장미 & mating dance’에서 ‘장미’는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을, ‘mating dance’는 ‘볼레로’를 음악으로 한 작품이다.

#음악에 춤이 짝짝 붙는다

이제는 영화나 광고에서 배경음악으로 흔히 들을 수 있지만 ‘볼레로’는 본래 춤곡이었다. 프랑스 작곡가 모리스 라벨이 1928년 무용수 아이다 루빈스타인의 부탁을 받고 만들어, 그해 10월 파리 오페라극장에서 초연되었다. 관현악곡인 ‘볼레로’는 리듬과 멜로디는 처음부터 끝까지 변하지 않지만, 뒷 부분으로 갈수록 악기가 추가되면서 점점 강도가 세지는 특징을 띤다. 안성수씨는 “반복적이며 단순한 구조라 오히려 변주의 여지가 많았다”고 말한다.

안씨가 처음 볼레로로 춤을 만든 건 1997년이었다. ‘8일간의 여행’이란 부제를 달았다. 2006년엔 줄거리가 있는 춤을 표방하며 ‘볼레로 의식’ ‘귀신이야기’ ‘여인천하’ 등 세 개의 연작 시리즈를 한해에 쏟아내기도 했다. “처음엔 작품을 만들려고 한 게 아니었다. 수업의 하나로 학생들에게 음악에 짝짝 붙는 춤을 추게 하려고 했고, 거기에 어울리는 게 ‘볼레로’였다.”

그가 말하는 ‘볼레로’의 매력은 포인트다. “모차르트의 음악은 선율은 아름답지만 추상적이다. 형상화시키기에 한계가 있다. 반면 ‘볼레로’는 반복적인 가운데 잠깐씩 액센트가 들어간다. 그 순간을 콕 집어내면 그게 바로 춤이다.”

이번 작품 ‘mating dance’는 번역하면 ‘교배 춤’이다. 안무가는 “짝짓기를 하기 직전 수컷들의 바보같은 서두름, 암컷들의 차분하지만 까탈스러움을 작품에 담아냈다”고 전했다.

안성수의 춤은 “박자를 하나하나 쪼개어 그 사이마다 빈틈없이 움직임을 채워넣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진은 2006년 공연된 ‘볼레로-귀신이야기’의 한 장면. [안성수 픽업무용단 제공]


#글로 쓸 줄 아는 게 진짜 춤

안성수씨의 춤은 “논리적이며 이성적”이란 평가를 받는다. 흔히 “춤은 감성적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과는 거리가 멀다. 그의 생각은 뚜렷했다. “춤이 무의미한 움직임이 되지 않기 위해선, 작업은 계획적이어야 한다. 안무가는 물론, 무용수마저도 자신의 춤이 어떻다는 걸 글로 써서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

그에 대한 평단의 반응을 폭발적이다. 박성혜 무용평론가는 “그의 작품은 지독하리만큼 세련됐다. 동작 하나하나의 섬세함뿐만 아니라 그 동작을 연결 짓고 구성해 놓은 걸 보면 기가 막힐 정도”라고 극찬했다. 유인화 무용평론가는 “3층 객석 춤”이라고 표현한다. 자리가 멀어 작품이 가물가물하게 보이는 3층에서 봐도 전혀 나쁘지 않을 만큼 정교하게 짜여졌다는 얘기다.

안성수씨는 “짜여진 구조 안에서 무용수는 초 단위로 자신의 동작을 셀 수 있어야 한다. 그걸 반복하는 과정에서 감성은 자연히 묻어난다”고 말한다. 뜬구름 잡는 얘기가 난무하는 한국 무용계에서 그의 ‘논리적 감수성’이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이유다.

◆‘장미 & mating dance’ 공연메모=17~19일 서울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1만원·2만원, 02-2263-4680. 

최민우 기자

◆안성수=1962년 서울 출신. 서울 대성고를 나와 서강대 신문방송학과에 진학했고, 군 제대후 복학하지 않고 “영화를 배우겠다”며 미국 마이애미로 훌쩍 날아갔다. 본인 말로는 “영어도 잘 안되고 스트레스를 하도 받아서 스트레칭을 하다가 무용의 맛을 알았다”고 한다. 결국 27세 때인 1989년에 미국 줄리어드대 무용과에 진학하며 처음으로 무용과 인연을 맺었다. 2005년 ‘올해의 예술상’을 수상했고, 2006년엔 러시아 모스크바 볼쇼이 극장에서 공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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