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대 '5백원 축구팀'“든든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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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5백원짜리 축구팀' . 96년 창단된 한국방송대 축구팀의 또다른 이름이다.

그러나 무려 세계최대의 학생수를 자랑하는 한국방송대의 '5백원짜리 축구팀' 은 이 학교 특유의 통신수업제 때문에 구심점이 없는 약점을 가리고도 남을 만큼 중요한 몫을 하고 있다.

이 축구팀을 위한 5백원은 성경책에 나오는 5개의 빵과 2마리의 물고기처럼 기적을 만들지도 모른다. 명문대 부럽지 않은 미래의 강호를 꿈꾸는 선수들이 있기 때문이다.

5백원의 사연은 이렇다. 학교측에서 특수대학의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팀 창단에 난색을 보이자 학생회는 학생 20만명이 학기당 2백50원씩 1년에 5백원을 걷어 국내 유일의 학생회 소속 스포츠팀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

총학생회장 김원석 (31) 씨는 "버스비에 불과한 5백원씩 모으면 한 학기에 5천만원, 1년이면 1억원이 된다.

이 돈으로 축구팀을 창단하면 학교에 대한 소속감을 주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고 밝혔다.

그러나 한국방송대가 기적을 만들기엔 아직도 어려움이 너무 많다. 우선 1억원은 축구팀을 운영하기엔 턱없이 적은 액수다.

웬만한 대학팀을 운영하는데 보통 2억원 정도의 예산이 드는데 운동장.팀숙소.학교버스도 없는 방송대학의 예산 1억원은 너무 적다.

선수들은 목욕 한번 하지 못했고 변변한 회식도 없었다. 주무 등 팀 관계자들도 학생들의 자원봉사로 채웠다. 군문제도 '5백원 축구팀' 이 극복해야 할 어려움이다.

방송대는 특수대학으로 분류돼 재학생들이 군입대를 연기할 수 없어 선수들이 모두 1, 2학년이다.

요즘 벌어지고 있는 가을철대학연맹전엔 팀내 유일한 골키퍼가 군에 입대해 축구를 포기한 선수를 다시 불러 나서고 있다. 더 큰 어려움은 선수들의 열등감이다.

방송대 양철원 (39) 감독은 "명문대 선수들에 대한 열등감을 지우는데만 1년이 넘게 걸렸다" 고 고백한다.

프로.실업팀으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있는 이 팀의 스트라이커 박태원 (2년) 은 "처음엔 운동장도 없는 대학에서 운동을 하는 자신이 처참했으나 어려운 가운데서도 5백원씩 정성을 모아준 학생들을 생각해 열심히 훈련에 전념했다" 며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이제 방송대 선수들은 강팀을 만나도 주눅이 들지 않는다. 방송대는 올해 4개 대회에 출전해 3승2무5패를 기록했다.

서울시장기 대회에서는 대학연맹전 단골 우승팀인 경희대에 2 - 0으로 승리했다. 요즘 벌어지고 있는 추계 연맹전에서도 1승1패를 기록중이다.

방송대 축구팀은 이제 진정한 기적을 향해 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김원석 총학생회장은 "축구회비를 1천원으로 올리고 군문제를 개선해 국내 최강팀 수준으로 지원하겠다" 는 벅찬 희망을 밝혔다.

성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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