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성관 ‘방어’ 아닌 ‘포기’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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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14일 오후 8시25분쯤 대검찰청 기자실에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의 사퇴 소식이 전달됐다. 대검 대변인실은 ‘5분 뒤 긴급 현안 브리핑이 있다’는 문자메시지를 기자단에 보냈다. 뒤이어 기자실에 들어온 조은석 대검 대변인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쪽지에 적힌 내용을 읽었다. “책임을 통감하고 공직 후보직을 사퇴한다”는 짤막한 내용이었다. 조 대변인은 추가 질문에는 “그 이상의 내용은 없다”고 입을 닫았다.

천 후보자의 사퇴는 전격적이었다. 불과 5시간 전인 오후 3시30분에만 해도 검찰이 천 후보자 관련 의혹에 대해 ‘공격적 대응’을 했다. 인사청문회 준비단은 A4용지 20쪽 분량의 자료를 내고, 천 후보자의 아파트 매입 과정 의혹과 위장전입 의혹 등에 대해 조목조목 해명했다. 그러나 천 후보자는 결국 ‘방어’가 아닌 ‘포기’를 택했다. ‘박연차 게이트’ 수사 도중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하면서 큰 상처를 입은 조직에 검찰총장 후보자가 설상가상 격으로 부담을 줄 수 없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대검 관계자는 “조직을 추슬러야 할 ‘소방수’가 불을 키우는 상황은 피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천 후보자가 사퇴한 데에는 청와대의 의중이 반영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검찰 고위 관계자는 “천 후보자 개인의 판단”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상황을 종합해 볼 때 야당의 사퇴 공세에 이어 청와대 안에서도 ‘사퇴론’이 불거지고 조직 내부에서도 동요가 일자 사퇴를 결심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천 후보자는 측근들에게 “모두 내 부덕의 소치”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날 천 후보자의 사퇴 사실이 알려지자 검찰 조직 전체가 충격과 당혹감에 휩싸였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검찰총장직 수행과 무관한 사적인 문제로 사퇴를 하게 되는 것이 너무 억울하다”며 “조직을 추슬러야 할 때에 바람직한 선택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나 다른 검찰 간부는 “천 후보자가 조직 내부에서도 해명이 명쾌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자 물러나기로 한 것 아니냐”고 했다. 13일 인사청문회에서 천 후보자가 자신을 둘러싼 ‘스폰서 의혹’과 가족의 호화 생활 논란을 쉽게 해명하지 못하면서 일선 검사들 사이에서도 “앞으로 검찰이 제대로 돌아가겠느냐”는 실망감이 고개를 들었다.

천 후보자를 둘러싼 의혹의 핵심에는 천 후보자에게 15억여원을 빌려준 사업가 박모씨가 있었다. 천 후보자는 지난 3월 서울 신사동의 82평짜리 아파트를 28억7500만원에 매입하면서 박씨로부터 15억5000만원을 빌렸다. 천 후보자는 “7억5000만원은 은행 대출을 통해 갚았고, 나머지 8억원은 먼저 살던 아파트를 판 돈으로 갚을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단순한 친분에 따른 임시 변통’이라는 해명에도 불구하고 검찰 안팎에서 천 후보자의 처신이 미심쩍다는 평가가 나왔다. 박씨가 천 후보자의 영향력을 기대하고 특혜를 제공한 것 아니냐는 것이었다. 아울러 아들의 전학을 위한 위장 전입 의혹, 친인척으로부터 무이자로 빌린 8억원에 대한 증여세 탈루 의혹 등이 제기됐다. 검찰은 청문회 다음 날인 14일 정치권과 여론의 동향을 파악하느라 분주했다.

김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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