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 중심축 한 + 중 + 일로 움직여 가스관·철도망 연결 사업 속도 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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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사의 산증인’으로 불리는 경제원로 남덕우 전 국무총리가 한·중·일 협력을 더 확대할 것을 제안했다. 동북아 개발은행 창립, 천연가스 파이프라인망 건설 등을 통해 3국이 협조해야 동북아 국가가 모두 득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종의 지역동맹 관계를 구축하자는 얘기는 아니다. 정치·외교적으로는 동북아 긴장관계에서 줄타기를 하되, 경제적으로 얻을 것은 최대한 얻자는 전략이다. 남 전 총리는 14일 한국선진화포럼 월례토론회에서 이런 내용을 우리나라의 정책전략으로 제시했다.

남덕우 전 국무총리가 14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열린 한국선진화포럼 월례토론회에서 ‘한국의 정책 전략’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김태성 기자]

남 전 총리는 1960년대 말부터 80년대 초까지 국무총리·경제부총리 등을 맡아 경제개발 계획을 진두지휘하며 한국 경제를 반석에 올려놓은 인물이다. 이날 토론회에는 진념·이승윤 전 경제부총리 등 각계 인사 200여 명이 참석했다.

◆동북아 철도망·천연가스 라인 연결=남 전 총리는 “금융위기 와중에도 아시아 국가들이 고성장을 유지하면서 세계 경제의 중심축이 아시아로 이동하고 있다는 주장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며 “그러나 정확하게는 한·중·일 중심의 동북아시아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북미의 경우 세계 GDP(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00년 30.6%에서 지난해 28.7%로 줄었고, 유럽연합(EU)도 같은 기간 31.7%에서 29.4%로 감소했다. 반면 아시아의 비중은 21%에서 23.5%로 늘었다. 지난해 아시아 GDP에서 동북아 국가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90%가 넘는 점을 감안하면 세계 중심축이 동북아로 움직이는 게 맞는 표현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동북아의 부상에 맞춰 한국을 중심으로 하는 한·중·일 협력사업에 속도를 내야 한다고 조언했다. 러시아 시베리아에서 생산한 천연가스를 ‘중국-북한-남한-일본’으로 수송하는 파이프라인망을 건설하는 것을 우선 과제로 꼽았다. 한·중·일 모두 석유 수입을 중동에 의존하고 있는데, 파이프라인이 건설되면 에너지 안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한·중·일뿐 아니라 러시아·북한도 득을 볼 수 있는 윈윈 전략이라는 것이다.

철도망의 연결도 마찬가지다. 한반도의 철도를 시베리아횡단철도와 중국횡단철도로 연결하면 일본에서 유럽까지의 화물 수송 시간을 30일에서 17일로 단축시킬 수 있다. 이런 지정학적 이점을 활용하면 우리나라를 동북아의 물류·인적자원의 중심지로 만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을 견제하되, 경제 교류는 넓혀야=남 전 총리는 “중국은 머지않아 동북아의 공룡이 되고 40년 후엔 세계의 공룡이 된다”고 말했다. 비단 경제력만의 얘기가 아니다. 현재 세계 3위의 군사대국인 중국은 경제성장에 따라 군비 지출을 늘릴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의 군사적 독주를 막기 위해서라도 ‘동북아 안보협력기구’ 같은 견제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하지만 경제협력은 중국이 성장할수록 더 확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미 중국은 우리의 최대 수출시장이 됐으며, 앞으로도 무역·투자·관광 등에서 가장 중요한 상대국이 된다”며 “중국과의 접근성 덕분에 제3국과 중국을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많이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물론 중국과의 경쟁도 치러야 한다. 이미 몇몇 공산품은 중국에 밀리기 시작했고 앞으로 그 수는 더욱 많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할 수 없고 우리나라는 가능한 틈새 시장은 존재하게 마련이다. 또 중국과 가장 가깝다는 점을 이용해 외국 기업과 합작해 중국에 진출할 수도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남 전 총리는 “2020년에는 중국에서 관광을 위해 출국하는 사람만 1억 명 이상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한반도와 다른 지역을 연결하는 인프라가 구축되면 한국의 역할은 비약적으로 증가할 것이고 여기에서 파생되는 소득·고용효과가 대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통일 대비 연해주 개발=남 전 총리는 특히 우리나라가 동포들이 많이 살고 있는 연해주에 적극 진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러시아 연해주는 토지의 장기 임대와 자치주 성립이 가능한 곳”이라며 “이 지역의 천연가스와 농작물·해양자원을 개발하고 시베리아 진출의 교두보로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통일 이후 북한 주민의 남하는 감당하기 어려운데, 지금부터 연해주를 개발해 놓으면 탈북 주민들의 거주지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중국의 서부 오지와 몽골·북한의 경제 개발을 촉진하기 위한 ‘동북아 개발은행’의 설립 ▶중국 대기오염 확산에 대한 공동 대응 ▶중소기업의 부품 생산능력 제고 ▶한자문화권 교류를 대비한 중·고교 한자 교육 강화 등을 주문했다.

손해용 기자, 사진=김태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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