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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게임 중독 해법찾기] ‘컴’일지 쓰고, 운동으로 스트레스 풀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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퀭한 눈, 초점 없이 흐릿한 눈동자, 구부정한 허리, 깡마른 몸…. 청소년들이 게임 중독에 빠져 망가져 간다. 우리나라 인터넷 중독자 수는 200만 명. 그중 인터넷 게임 중독을 포함한 청소년 인터넷 중독자 수는 104만 명(성인 96만 명)이다. 당장 치료받아야 할 고위험 사용자군도 16만8000여 명에 이른다. 행정안전부가 발표한 ‘2008년 인터넷 중독 실태 조사’ 내용이다. 이들은 왜 인터넷 게임에 몰입하는가. 별 이유가 없다. 그냥 ‘재미있어서(84%)’다. 청소년들이 재미를 느낄 만한 다른 놀거리가 없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청소년 게임 중독의 해법을 알아본다.

게임 중독 예방 캠프에 참석한 어린이들이 놀이를 통해 게임 중독의 심각성에 대해 깨우쳤다. [사진=황정옥 기자]

“게임 하면 재밌잖아요. 딴 생각도 안 나고. 하지만 게임의 노예가 될까 봐 무서워요.” 11일 서울 삼성동 한국 어글로우회관에서 진행된 ‘인터넷 온라인 게임 중독 예방 가족캠프’에 참가한 어느 초등학생의 말이다. 방학을 앞두고 평소보다 많은 스물여섯 가족 60여 명이 ‘게임 중독을 막아 보자’는 한마음으로 모였다.

최화선(43·경기도 의정부시)씨는 “아들 윤서(의순초 6)가 일주일에 세 시간만 게임을 하기로 약속했다. 힘들 텐데 잘 지키고 있다고 했다. 정선미(34·여·경기도 파주시)씨도 아들 박시원(파주송화초 4)군이 중학교에 올라가기 전 게임 습관을 잡아 주고 싶어 참가했다. 캠프 진행을 맡은 놀이미디어교육센터 권장희 소장은 “게임 때문에 자녀와 부모의 관계가 나빠지면 자녀는 더 게임에 빠지게 된다”며 “방학 동안 아이가 왜 게임을 좋아하는지 부모가 먼저 이해하는 시간을 가질 것”을 권했다.

우선 자신의 상태를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상태에 따라 일반, 잠재적 위험, 고위험 사용자로 나뉜다. 한국정보화진흥원 인터넷중독예방상담센터 고영삼 센터장은 “고위험자 중 일부나 공존 질환자(인터넷 중독+우울증이나 불안, 주의력 결핍 내재) 외에는 예방이나 상담으로 개선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일반 사용자 ‘욕망 조절’ 연습

연세대 심리학과 황상민 교수는 “청소년에게 게임은 세상과 소통하는 수단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 때문에 게임 하는 것을 무조건 말릴 게 아니라 스스로 욕망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 주는 것이 필요하다.

일반 사용자군은 게임 습관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수준이다. 따라서 이때 자기 관리 연습을 하면 좋다. ‘컴퓨터 사용일지’를 써 보게 한다. 한달 정도 작성하면 아이의 컴퓨터 사용 패턴을 알 수 있어 이 시간에 할 수 있는 대안활동을 찾을 수 있다.

한국정보화진흥원 전종수 건전정보문화 촉진 단장은 “미국에서는 온라인 게임을 할 때 옆에서 시간 조절을 해 줄 수 있는 조언자를 두게끔 지도한다”고 말했다. 알람시계를 이용해 끝내야 할 시간을 알려 주는 것도 방법이다. 부모가 직접 관리하기 어렵다면 시스템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국내 한 통신사가 운영하는 ‘타임코디’는 인터넷 사용 시간을 웹사이트나 자동응답 시스템을 통해 원격으로 실시간 관리·모니터링할 수 있게 해 준다. 인터넷 사용 시간을 설정할 수 있고, PC 화면을 휴대전화로 볼 수도 있다.

잠재적 위험 사용자 ‘밖에 나가 놀아라’

게임에 몰입하는 경향을 보이는 ‘잠재적 위험 사용자’는 게임과 현실을 혼동하거나 대인 관계, 일생생활에 문제를 나타낸다. 자기 통제력을 잃고, 충동적·공격적이다. 이 상태에서는 예방 교육으로 개선이 가능하지만 우울증이나 주의력 결핍까지 중복되면 전문가의 상담이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청소년의 게임 중독을 막기 위한 방법 중 하나로 ‘운동’을 꼽았다. 중독 초기 증상, 즉 컴퓨터 속도가 느리다고 불평하거나 가족 행사 참여 횟수가 줄고 게임 할 때만 눈빛이 살아 있다면 자녀를 밖으로 데리고 나갈 필요가 있다. 컴퓨터에서 벗어나게 한다는 목적 때문만은 아니다.

중앙대 용산병원 정신과 한덕현 교수는 EBS ‘아이의 사생활’ 제작팀과 공동으로 진행한 실험에서 ‘운동’이 게임 중독으로 손상된 뇌를 건강하게 변화시킨다는 결과를 얻었다. 게임 중독 판정을 받은 중3 남학생 5명에게 농구를 시켰더니 뇌 전두엽 부위에 변화가 있었다는 것. 운동 전엔 산수 문제를 푸는 데 전두엽을 사용하지 않았지만 운동 후엔 전두엽을 활용해 문제를 풀었다. 중독이 심할수록 운동 기간을 늘리면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예상이다.

게임 속에서 레벨을 높이는 것은 중독 증상을 한 단계 올리는 일이다. 게임 중독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지금까지 모아 온 아이템과 키워 온 캐릭터를 모두 버려야 한다. 액션 게임은 연습이 필요해 중단 기간을 갖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된다. 승부와 무관한 게임을 하는 것도 방법. 또 컴퓨터로 처리하는 습관을 버리고 손으로 하는 일을 늘리는 것도 좋다.

자녀가 게임 중독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한 부모의 접근 방법은 성별에 따라 달라야 한다. 시작 시기가 빠를수록 게임에 중독될 가능성이 크다. 여학생은 부모가 게임을 못 하도록 통제할수록 게임 중독 성향이 크다. 연세대 교육대학원 김은주 교수는 “남학생은 실내 놀이문화가 상대적으로 부족하고, 여학생은 부모와의 관계에서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를 해결하려면 남자아이들에게는 놀이문화를 다양하게 경험하게 해 게임 시작 시기를 늦추는 게 좋다. 여학생에게는 게임의 자율성을 인정해 준다. 

고위험 사용자 ‘전문 상담과 치료 필요’

게임 중독 예방이나 치료를 해도 실패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이는 청소년들의 성장기 특성과 관계있다.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놀이에 몰입한다. 그들에게 게임은 재밌는 놀이 자체다. 이 때문에 게임의 유혹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한다. 게임에서 대리만족을 느끼기도 한다. 현실에서는 소극적인 아이라도 가상세계에서는 적극적이 될 수 있어 더 빠져나오기 힘들다. 심지어 또래들의 영향을 많이 받는 시기여서 소외되지 않기 위해 게임을 하기도 한다.

고위험 사용자 수준이 되면 전문적 상담과 치료가 필요하다. 이럴 때는 정부에서 운영하는 무료 캠프 등에 참여해 볼 수 있다. 보건복지가족부와 한국청소년상담원이 운영하는 ‘인터넷 중독 기숙형 치료학교’는 11박12일 동안 합숙치료를 한다. 한국청소년상담원 조규필 팀장은 “대안활동과 상담, 심리 치료, 부모 교육을 통해 지난해까지 치료학교를 수료한 63명의 학생 중 79%가 개선 효과를 봤고 58%는 중독에서 거의 벗어났다”고 말했다. 행정안전부에서는 인터넷 중독 핫라인 서비스 ‘아름누리상담콜’을 진행하고 있다. 일 년 365일 내내 오전 2시까지 운영하는데 메신저와 채팅으로 즉각적인 질의응답을 할 수 있다. 중증 인터넷 중독자는 ‘사이버치료센터’를 통해 병원 정신과 전문의와 인터넷 상담도 할 수 있다.

예당온라인은 게임회사 중 처음으로 게임에 중독된 학생들을 전문가와 만날 수 있게 해 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NHN은 한게임 이용자에게 전문 상담과 치료 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 한국정보화진흥원 전종수 단장은 “게임회사들이 ‘게임 과몰입’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게임 중독의 심각성을 외면하고 있다”며 “이제 정부와 게임업체가 적극적으로 참여해 날로 늘어 가는 게임 중독의 해결책을 함께 고민하고 연구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동 게임 중독 진단 35점 이하 일반 사용자. 지속적 자기 점검 요망/잠재적 위험 사용자 36~45점 게임 중독 행동 주의, 예방 프로그램 요망, 고위험 사용자 46점 이상 전문적 치료 지원, 상담 요망 ●청소년 게임 중독 진단 37점 이하 일반 사용자 38~48점 잠재적 위험 사용자 48점 이상 고위험 사용자 ※자료= 한국정보화진흥원 인터넷중독예방상담센터

인터넷 자녀 지도 십계명

[1] 컴퓨터와 인터넷을 통해 많은 유익한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친다.

[2] 인터넷을 할 때 옆에 있어 줘야 한다. 여건이 안되면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을 찾는다.

[3] 자녀가 가입한 e-메일과 사이트의 ID와 비밀번호를 공유하고, 메신저 친구를 체크한다.

[4] 아이의 정서 상태를 점검한다. 아이의 성향도 알아야 한다. 승부욕이 강하고 충동적이며 내성적일수록 인터넷을 가까이한다.

[5] 인터넷을 사용하면서 식사나 군것질을 하지 않도록 한다.

[6] 부모 스스로 인터넷 사용 능력을 키운다.

[7] 음란물 차단 시스템을 설치한다. 정기적으로 아이의 인터넷 사용 상태를 점검한다.

[8] 인터넷으로 금전 거래를 하는지 살핀다.

[9] 인터넷 사용 규칙을 정하고 점검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 준다. 스스로 조절하기 어려울 경우 시간 관리 소프트웨어를 설치한다.

[10] 자주 가는 PC방을 알아 두고 주인에게 시간이 초과되면 귀가할 수 있도록 요청한다.


글=박정현 기자
사진=황정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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