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대학생의 허망한 살신성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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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꽃다운 젊은이가 위험에 처한 어린아이를 구하고 대신 숨졌는데도 아이의 부모가 나몰라라 자취를 감춰버리다니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 살신성인 (殺身成仁) 의 숭고한 뜻을 저버린 팍팍한 세태에 젊은이 유족들은 넋을 잃었다.

지난 18일 오후 6시5분쯤 경기도남양주시수동면운수3리 구운천 제방 밑. 가족들과 함께 물놀이 갔던 한성수 (韓成洙.24.건국대 법학1.남양주시화도읍창현리) 씨가 급류에 떠내려가는 어린아이를 구한 뒤 물에 빠져 숨졌다.

韓씨는 당시 낚시채비를 갖추며 물가에 앉아 있었다.

"살려달라" 는 어린아이의 비명소리에 놀란 누나 윤경 (允慶.27) 씨가 "빨리 구해주라" 고 다급히 외치자 그는 50여m나 헤엄쳐 나가 아이를 밖으로 밀어낸 뒤 탈진, 소용돌이에 휘말려 변을 당했다.

현장을 목격한 韓씨 외조카 裵모 (12.C초등교5년) 양은 "물에서 허우적거리는 외삼촌을 구하기 위해 사람들이 정신이 없는 틈에 아이의 엄마로 보이는 아줌마가 나타나 구조된 남자아이를 데리고 그대로 사라졌다" 고 말했다.

누나 윤경씨는 "수영에 익숙하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물에 뛰어들어 목숨을 구해주고 숨진 은인 (恩人) 을 나몰라라 한 채 '고맙다' 는 인사 한마디 건네지 않고 가버린 아이의 부모가 야속하다" 며 분통을 터뜨렸다.

한양대 구리병원 영안실에 시신을 안치한 韓씨 부모들은 자식 (1남4녀) 중 외아들이자 막내인 아들을 잃은 비통에 빠져 있다.

韓씨의 익사사고를 조사했던 경기도 남양주경찰서 수동파출소 최낙금 (崔洛金.32) 순경은 "의로운 희생정신을 외면하는 기막힌 현실이 개탄스럽다" 고 말했다.

남양주 = 전익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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