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진혁칼럼]JP총리와 DJP합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앞으로 내각제가 실현된다면 1998년 8월 17일은 어쩌면 이 나라에 역사적인 날로 기록될지도 모른다.

김종필 국무총리 서리가 이날 마침내 '서리' 꼬리를 떼는 국회의 임명동의를 받았기 때문이다.

과거엔 총리든 총리서리든 별로 차이가 없었다.

대통령밑의 '얼굴마담' 또는 '대독 (代讀) 총리' 이긴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JP의 경우는 이제부터 중대한 분수령에 서게 된 것 같다.

다름아닌 'DJP합의' 가 있기 때문이다.

국민회의와 자민련이 작년 대통령선거 전에 DJ를 단일 대통령후보로 추대하면서 작성한 합의문은 "총리의 국무위원임명제청권과 해임건의권을 법률로 보장하는 등 총리의 위상을 대폭 강화한다" 고 돼 있다.

또 내각제개헌을 위해 집권후 양당동수 (兩黨同數) 로 내각제추진위원회를 구성한다고 돼 있다.

이 합의문은 그동안 경제위기상황과 JP에게 붙은 서리라는 꼬리 때문에 잠자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JP가 꼬리를 떼고 정식 총리가 됐으니 그렇다면 합의문은 지금부터 발효될 것인가, 아니면 지난 5개월여와 마찬가지의 상태가 계속될 것인가.

공동정부 담당세력들이 이 문제를 과연 어떻게 처리할지 커다란 관심거리가 아닐 수 없다.

그렇찮아도 공동정부는 그동안 내부마찰이 적지 않았다.

지방선거때엔 후보공천을 놓고 잡음이 많았고, 인사문제를 놓고도 불만과 갈등이 많았으며, 정책을 두고도 가령 햇볕론에 대해 자민련에선 소극적.냉소적 반응이 나왔다.

공동정권의 이런 갈등은 그래도 JP서리 시절엔 DJ의 의심할 여지없는 지도력 밑에서 봉합돼 왔다.

그만큼 JP서리가 몸을 낮추고 2인자 역할을 조심스럽게 해 왔다는 얘기기도 하다.

그렇지만 서리아닌 정식총리로서, 더구나 위상강화가 법으로 뒷받침되는 JP총리가 들어서면 공동정권의 모습은 어떻게 될까. DJP합의문에 따르면 내년 12월까지 독일식 순수내각제 개헌을 하게 돼 있고, 대통령과 내각수반의 선택권을 자민련이 갖게 돼 있다.

독일식 내각제의 실권은 내각수반이 갖는다.

잘하면 JP가 2000년부터는 집권자가 될 수도 있다는 얘기가 된다.

그렇다면 JP는 실세총리에 이어 집권까지도 바라보는 '떠오르는 태양' 인가.

그럼 공동정부는 지금부터 2핵 (核) 체제로 갈 것인가.

권력은 부자 (父子) 간에도 나누지 못한다는데 2핵체제가 현실적으로 가능할지는 의심스럽다.

그리고 그런 체제로 원활한 국정추진이 이뤄질지도 의문이다.

아니면 JP총리가 서리꼬리가 붙었던 때보다는 다소 더 실권을 행사하면서도 기본적으로는 여전히 대통령을 잘 모시는 2인자 처신을 할지도 모른다.

경제위기라는 급류 (急流) 의 한복판에서 확고한 리더십이 필요함은 누구나 공감한다.

그런 상황을 명분삼아 '운영의 묘 (妙)' 로서 총리의 적절한 역할을 모색할 수도 있겠기 때문이다.

그러나 DJP합의문 때문에 JP가 어떤 처신을 하든 서리꼬리를 뗀 그의 등장은 과거 총리와는 다를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YS정권때의 총리 세사람은 지금 여권에 몸담고 있다.

YS정권은 실정 (失政) 과 국난 때문에 여권의 호된 비판을 받고 있고 당시 부총리.수석비서관 등은 기소까지 돼 있는 형편인데 그 정권에서 총리를 지낸 사람이 3명씩이나 여권에 몸담고 있다는 것은 곧 그 시절 총리는 실세가 아니여서 실정에 사실상 책임이 없기 때문이라는 논리가 아니겠는가.

JP총리의 위상이 최소한 과거의 그런 총리와는 다를 것이란 것은 쉽게 짐작이 간다.

그렇다면 어떤 위상일까. 그건 두고 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가 서리꼬리를 떼면서부터 많은 사람들이 한동안 잊혀졌던 DJP합의문을 떠올리게 됨을 공동정부는 알아야 할 것이다.

이제부터 내각제실험이 시작되는가, 내각제는 언제부터 추진될까, 실세총리라면 어느정도 실세이며 공동정부는 어떻게 운영되는가…. 이런 의문의 뭉게구름이 피어오르는 것이다.

이런 문제는 곧 정치판도와 국정운영, 나아가 21세기 리더십과도 직결되는 핵심사항이다.

항간에선 이미 내각제개헌이 실은 안될 것이라든가, 여권이 대통령중심제를 지지하는 이회창 (李會昌) 씨의 야당 당권장악을 내심 좋아한다든가 하는 말이 나오고 2원정부제개헌설 등이 돌아다니고 있다.

공동정부 당사자들은 이런 문제에 관해 명백하고도 확실한 입장정리를 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국정의 안정적 추진이 가능하고 불필요한 국민걱정과 떠도는 풍설 (風說) 도 막을 수 있다.

송진혁(논설실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